[이대론 대한민국 미래없다] "감사 무서워"…정부 주도 민간투자사업 5년간 단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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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공포증에 갇힌 공직사회
4대강·자원개발 감사 등 정책 소신도 꺾어
실세 부총리 있는 기재부도 '표적감사' 홍역
"국회 산하로 축소 개편해야" 주장까지 나와
4대강·자원개발 감사 등 정책 소신도 꺾어
실세 부총리 있는 기재부도 '표적감사' 홍역
"국회 산하로 축소 개편해야" 주장까지 나와
지난해 8월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감사원을 질책했다. 이날 회의에 상정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에 포함될 예정이던 공무원 적극행정 면책 조항이 감사원의 반대로 삭제된 것을 확인한 뒤였다. 최 부총리는 “규제개혁을 아무리 외쳐본들 실제 규제를 집행하는 기관에서 감사가 두려워 적극적인 행정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 후 기재부는 감사원의 ‘보복 감사’ 대상이 됐다. 감사원은 일부 공공기관 감사를 벌이면서 주무부처인 기재부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캤다. 한 공공기관 임원은 “작년 말 감사원 감사 때 기재부의 비리를 교묘하게 추궁당했다”며 “실세 부총리가 있는 기재부조차 ‘표적 감사’ 대상이 되는데, 다른 부처는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정권마다 개혁 실패 ‘공포증’ 커져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은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공직사회의 회계부정이나 비리는 물론이고 1994년부터는 정책의 적정성까지 감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감사원 정원은 1035명으로 수석 경제부처인 기재부(1003명)보다 30여명이나 많다. 감사원장은 부총리급 대접을 받는다. 차관급도 감사위원 여섯 명과 사무총장 한 명 등 모두 일곱 명으로 기재부(두 명)보다 세 배 이상 많다.
중앙행정부처 중 최대 규모지만 견제기관은 사실상 없다. 국회 국정감사를 받긴 한다. 그러나 국회는 감사원에 감사청구권을 행사하는 ‘공생관계’이기 때문에 엄정한 견제를 기대하기 어렵다. 감사 결과를 최종 의결하는 최종의사결정기구 감사위원회의도 감사원 출신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원장을 제외한 감사위원 여섯 명 중 세 명은 감사원 내부에서 승진했다. 이 같은 지배구조는 선진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기형적 형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사원은 개혁 대상에 올랐다. 정책 감사의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이 더 크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이 전(前)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감사원을 이용하면서 개혁의 화살은 번번이 빗나갔다.
감사 무서워 쉬운 R&D과제 선정
‘감사 공포증’은 공직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 주도 민간투자사업의 몰락이다. 2010년 이후 정부가 주도한 민간투자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앙부처뿐 아니라 지방정부 공무원도 정부 고시 사업으로 민간투자사업을 제안할 수 있지만 감사가 무서워 아예 말도 꺼내지 않는다”며 “사업 규모가 조(兆) 단위에 달하다 보니 잘되더라도 사소한 잘못으로 징계를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전면 중단된 해외 자원개발사업도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관계자는 “똑같은 해외 자원개발사업을 놓고도 정권이 바뀌자마자 감사 결과가 180도 바뀌는데 앞으로 누가 해외 자원개발에 총대를 메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든 공기업이든 관련 업무를 ‘하는 척’만 하다 결국 아무 일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식적인 국가 연구개발(R&D)사업에도 감사 책임을 피하기 위한 장치가 녹아있다. 연구비 유용을 막고 R&D 실패에 따른 감사 책임을 피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성공률 높은 과제만 선정한다는 것이다. 그 여파로 한국의 R&D 과제 성공률은 98%대이지만 사업화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국민 위한 정책도 문제 삼는 구조”
정책 수립 과정에서 발주하는 연구용역도 감사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용도로 남발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의미 없는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 돼 버렸다”며 “결국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이 감사 회피 보험을 드는 셈”이라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부과하는 과징금이 대부분 법에서 정한 범위의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는 배경에도 감사원이 버티고 있다. 감사원이 공정위 등 과징금 부과 부처를 감사할 때마다 과징금 감면 사실이 확인되면 공무원들에게 ‘기업에서 뒷돈을 받은 것 아니냐’는 식으로 추궁하기 때문이란 후문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감사원은 공무원이 국민을 위하는 정책을 펴면 문제 삼는 구조에 갇혀 있다”며 “미국처럼 행정부처 내에 독립적인 감사 기구를 갖추고 감사원은 국회 산하로 축소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진형/황정수/심성미 기자 u2@hankyung.com
얼마 후 기재부는 감사원의 ‘보복 감사’ 대상이 됐다. 감사원은 일부 공공기관 감사를 벌이면서 주무부처인 기재부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캤다. 한 공공기관 임원은 “작년 말 감사원 감사 때 기재부의 비리를 교묘하게 추궁당했다”며 “실세 부총리가 있는 기재부조차 ‘표적 감사’ 대상이 되는데, 다른 부처는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정권마다 개혁 실패 ‘공포증’ 커져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은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공직사회의 회계부정이나 비리는 물론이고 1994년부터는 정책의 적정성까지 감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감사원 정원은 1035명으로 수석 경제부처인 기재부(1003명)보다 30여명이나 많다. 감사원장은 부총리급 대접을 받는다. 차관급도 감사위원 여섯 명과 사무총장 한 명 등 모두 일곱 명으로 기재부(두 명)보다 세 배 이상 많다.
중앙행정부처 중 최대 규모지만 견제기관은 사실상 없다. 국회 국정감사를 받긴 한다. 그러나 국회는 감사원에 감사청구권을 행사하는 ‘공생관계’이기 때문에 엄정한 견제를 기대하기 어렵다. 감사 결과를 최종 의결하는 최종의사결정기구 감사위원회의도 감사원 출신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원장을 제외한 감사위원 여섯 명 중 세 명은 감사원 내부에서 승진했다. 이 같은 지배구조는 선진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기형적 형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사원은 개혁 대상에 올랐다. 정책 감사의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이 더 크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이 전(前)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감사원을 이용하면서 개혁의 화살은 번번이 빗나갔다.
감사 무서워 쉬운 R&D과제 선정
‘감사 공포증’은 공직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 주도 민간투자사업의 몰락이다. 2010년 이후 정부가 주도한 민간투자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앙부처뿐 아니라 지방정부 공무원도 정부 고시 사업으로 민간투자사업을 제안할 수 있지만 감사가 무서워 아예 말도 꺼내지 않는다”며 “사업 규모가 조(兆) 단위에 달하다 보니 잘되더라도 사소한 잘못으로 징계를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전면 중단된 해외 자원개발사업도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관계자는 “똑같은 해외 자원개발사업을 놓고도 정권이 바뀌자마자 감사 결과가 180도 바뀌는데 앞으로 누가 해외 자원개발에 총대를 메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든 공기업이든 관련 업무를 ‘하는 척’만 하다 결국 아무 일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식적인 국가 연구개발(R&D)사업에도 감사 책임을 피하기 위한 장치가 녹아있다. 연구비 유용을 막고 R&D 실패에 따른 감사 책임을 피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성공률 높은 과제만 선정한다는 것이다. 그 여파로 한국의 R&D 과제 성공률은 98%대이지만 사업화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국민 위한 정책도 문제 삼는 구조”
정책 수립 과정에서 발주하는 연구용역도 감사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용도로 남발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의미 없는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 돼 버렸다”며 “결국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이 감사 회피 보험을 드는 셈”이라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부과하는 과징금이 대부분 법에서 정한 범위의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는 배경에도 감사원이 버티고 있다. 감사원이 공정위 등 과징금 부과 부처를 감사할 때마다 과징금 감면 사실이 확인되면 공무원들에게 ‘기업에서 뒷돈을 받은 것 아니냐’는 식으로 추궁하기 때문이란 후문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감사원은 공무원이 국민을 위하는 정책을 펴면 문제 삼는 구조에 갇혀 있다”며 “미국처럼 행정부처 내에 독립적인 감사 기구를 갖추고 감사원은 국회 산하로 축소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진형/황정수/심성미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