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종묘제례악 야간 공연 장면. 종묘제례악은 종묘에서 역대 왕과 왕비의 제사(종묘제례)를 지낼 때 연주한 음악이다. 문화재청 제공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종묘제례악 야간 공연 장면. 종묘제례악은 종묘에서 역대 왕과 왕비의 제사(종묘제례)를 지낼 때 연주한 음악이다. 문화재청 제공
궁궐은 왕조의 상징이다. 경복궁을 비롯한 한양 궁궐들은 조선 왕실의 보금자리이자 국정을 논하는 자리였다. 1395년 경복궁이 지어진 이래 조선 궁궐은 600년이 넘도록 서울의 랜드마크였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소실과 중건, 훼손을 거듭한 궁궐은 이제 시민의 역사의식을 키우는 문화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조선 궁궐을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고 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 최초이자 제일의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이다. 백악산을 등지고 자리 잡은 광화문 앞에는 넓은 육조 거리가 형성됐다. 경복궁은 확장과 중건을 거듭하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 이후 270년 동안 복구하지 못하고 방치됐다가 1867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됐다. 왕과 관리들이 정무를 보는 외전과 관청, 왕족과 궁인들의 내전과 각종 건물들, 휴식을 위한 정원 시설 500여동이 건립됐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전각의 90% 이상이 헐리고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는 등 크게 훼손됐다. 정부는 1990년부터 복원사업을 추진해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건청궁과 광화문을 복원했다.

600년 '한양 랜드마크' 였던 경복궁…대한제국의 한 서린 덕수궁
1405년 지어진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평가받는다. 처음에는 경복궁의 보조 역할을 하는 이궁(離宮)이었다. 임진왜란 때 한양 궁궐이 모두 불에 탄 뒤 경복궁은 터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재건되지 않았다. 1610년 광해군 2년에 창덕궁이 재건되고 경복궁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270년 동안 법궁으로 사용됐다. 창덕궁은

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왕가의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공간 구성은 경희궁이나 경운궁 같은 다른 궁궐을 지을 때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 시대에는 궁궐 동쪽에 세워진 창경궁과 경계를 두지 않고 사용했으며 북쪽엔 왕실의 정원인 후원이 있다.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정궁이다. 본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1593년부터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됐다. 이후 광해군이 이곳에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광해군이 1615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뒤 별궁 역할을 했다. 경운궁은 대한제국 시절 지금 넓이의 세 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지만, 고종황제가 황위에서 물러나자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는 등 위상이 약화됐다. 일제가 1920년부터 선원전과 증명전 일대를 팔아넘겨 궁궐의 넓이가 크게 줄었고, 1933년 많은 전각이 사라지고 공원으로 조성됐다.

창경궁은 성종이 1483년에 지은 궁궐이다. 창덕궁과 함께 동궐(東闕)로 불렸다. 성종은 세종이 아버지를 위해 지은 수강궁을 확장 보완해 창경궁이란 이름을 붙였다. 창경궁도 임진왜란 때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폐허가 됐다가 1616년 재건됐다. 하지만 일제가 창경궁 안 건물을 대부분 헐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며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정부는 1983년 동물원을 옮기는 등 복원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종묘는 조선 왕조에서 궁궐 못지않게 왕가에 중요한 건물이다.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국가 사당이다. 건립 후 모시는 신주의 수가 늘어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종묘에 없지만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의 신주는 영녕전에 모셔져 있다. 종묘는 건물과 더불어 제례와 제례악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1995년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궁궐을 활용한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해설과 공연을 곁들인 창덕궁 야간답사 프로그램 ‘창덕궁 달빛기행’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행사다. 20명가량으로 구성된 조별로 안내를 받고 연경당에서 전통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덕수궁에서는 춤과 소리가 어우러진 야간 상설 공연인 ‘덕수궁 풍류’가 열린다. 중요무형문화재 전승자들이 덕수궁 정관헌에서 펼치는 국악 공연이다.

문화재청은 궁궐 특성에 맞춘 고품격 전통 공연을 열고 있다. 법궁의 위상에 맞는 궁중음악(경복궁), 궁궐 경관과 어울리는 풍류 음악(창덕궁), 이야기가 있는 퓨전국악(덕수궁)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유산인 종묘와 종묘제례악에 대한 이해와 감상을 돕기 위해 마련한 ‘해설과 이야기가 있는 종묘제례악’은 문화유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우수 공연으로 꼽힌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