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전통 목조건물·서양 건축양식 어우러져
서울 정동에 있는 덕수궁(사적 제124호)은 조선 선조 때 왕의 임시 거처로 사용됐다가 조선 후기에 궁궐 모습을 갖춘 곳이다. 전통 목조건축과 서양식 건축양식을 함께 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본래는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집이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머물렀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이 창경궁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에는 경운궁으로 불리다가 고종 34년(1897)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 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궁궐다운 장대한 전각들을 갖추게 됐다.

덕수궁의 중심 건물인 중화전(보물 제819호)은 왕이 하례를 받거나 국가 행사를 거행하던 곳이다. 임금이 앉는 어좌 정면으로 펼쳐진 돌마당에는 문무백관의 지위와 위치를 나타낸 품계석이 늘어서 있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를 그린 병풍을 놓았다. 중화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중화문은 조선 후기 다포 양식(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해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것)을 보여준다. 원래는 좌우로 복도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문 동쪽에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보물 제820호인 함녕전은 고종황제의 생활공간으로 쓰인 건물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인데 위쪽에 여러 잡상 조각을 장식해 놓았다. 특히 추녀마루에 조각들을 나열한 것이 독특하다. 내부는 큰 마루를 사이로 동쪽 방을 고종황제의 침실로 꾸미고, 서쪽 방을 황후의 침실로 꾸몄다. 그 둘레 공간은 왕의 신변 보호와 의식주를 담당했던 상궁들의 거처로 사용했다. 고종이 승하한 곳도 이곳이다.

함녕전 뒤뜰에 있는 정자인 정관헌은 고종이 다과를 들고 음악을 감상하던 곳이다. 궁궐건물로는 최초로 서양식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동양의 건축과 서양의 건축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인상을 준다. 동양식 팔작지붕을 서양식 차양칸이 두르고 있다. 안쪽 기둥에는 중세 유럽 로마네스크 양식을 따른 인조석 기둥이 줄지어 있고, 목재로 만든 외부 기둥에는 청룡과 황룡, 꽃병 등 화려한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

덕수궁 석조전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 건물이다. 영국인 하딩이 설계했다.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1층에서는 시종들이 대기하고, 2층은 황제의 접견실, 3층은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응접실로 사용됐다. 현재는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