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수많은 국보·보물 담은 조선의 중심지
서울 세종로 경복궁(사적 제117호)은 조선의 중심지였다.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을 가진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다. 태조 4년(1395년) 처음 지었다가 임진왜란(1592년)으로 불탄 것을 1867년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다.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 보면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만날 수 있다. 근정전(국보 제223호)은 경복궁의 중심 건물이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던 곳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 연못을 크게 넓히고 인공 섬 위에 경회루(국보 제224호)를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세 개를 놓았다. 국내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이다. 이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외국 사신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도 경복궁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유적으로 꼽힌다. 고려시대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67)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원래 원주 법천사터에 있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일본 오사카로 빼돌려졌다가 반환됐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이후의 탑이 8각을 기본형으로 한 것에 비해 이 탑은 전체적으로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한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지붕돌은 네 모서리가 추켜올려 있으며, 밑면에는 불상과 보살, 봉황 등을 조각해 놓았다.

자경전 뒷담에 있는 십장생굴뚝(보물 제810호)도 볼거리다. 굴뚝은 네모 형태로 자경전 뒷담의 한 면을 돌출시켜 만들었다. 가운데는 십장생을 새겨 넣었다. 고종의 양어머니인 조대비(신정왕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조선시대 궁궐에 있는 굴뚝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꼽힌다.

이 밖에도 왕과 그 가족들이 휴식을 취했던 향원정(보물 제1761호), 근정문 및 행각(보물 제812호), 사정전(보물 제1759호), 수정전(보물 제1760호)도 놓쳐서는 안 될 유적이다.

다음달 2일까지 야간 개방을 해 화려한 경복궁의 밤을 만날 수 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