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인증’이 남발되면서 인증제도가 본래의 도입 취지와 달리 기업의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카시트 안전 인증시험 장면. 한경DB
‘유사 인증’이 남발되면서 인증제도가 본래의 도입 취지와 달리 기업의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카시트 안전 인증시험 장면. 한경DB
중소기업 제품의 품질 향상과 판로 확대를 돕기 위해 도입된 인증제도가 기업 경영의 큰 걸림돌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슷한 인증을 중복해서 받아야 하고 매년 인증 사용료를 내야 하는 등 관련 부담이 커지면서다.

인증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일정 조건을 충족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제도다. 의무 인증과 임의 인증으로 나뉜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의무 인증과 달리 임의 인증은 강제성이 없다. 하지만 해당 인증을 취득하지 않으면 공공 조달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시장이 주요 판매처인 중소기업에는 사실상 강제 인증에 가깝다.

○중복 인증으로 부담 증가

[이대론 대한민국 미래없다] 유사 인증 두세 개 받아야 공기관 납품…중소기업은 괴롭다
인증제도 자체는 기업 경쟁력 제고 등 순기능이 적지 않다. 하지만 ‘유사 인증’의 남발로 초래된 ‘과잉 인증’은 또 하나의 규제가 될 우려가 높다.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임의 인증 건수는 2005년 51건에서 올해 130건으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지난 5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인증 취득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510개를 조사한 결과 이 기업들은 평균 10.0개의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관련 비용으로 연간 3000여만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예컨대 중소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A사는 지난 4월 행정자치부의 ‘행정업무용 소프트웨어 인증’을 받는 데 시험비 150만원을 썼다. 공공 조달시장에 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정부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에 등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해당 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 뒤에 비슷한 내용의 인증인 미래창조과학부의 ‘소프트웨어 품질 인증’을 받는 데 350만원을 추가로 냈다. 해당 인증을 받으면 공공기관이 다른 제품보다 우선 선택해야 하는 ‘우선구매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행정업무용 소프트웨어 인증’을 받은 제품 184개 중 26.1%인 48개가 ‘소프트웨어 품질 인증’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환경부의 ‘탄소성적표지 인증’과 ‘환경성적표지 인증’, 농림축산식품부의 ‘술 품질 인증’과 ‘전통식품 품질인증’, 산업통상자원부의 ‘항공우주분야 성능검사 및 품질검사 인증’, 국토교통부의 ‘항공기 등 형식증명 및 기술표준품 형식승인’ 등도 시험 항목과 통과 기준이 비슷한 중복 인증으로 꼽힌다. 김문겸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사실상 똑같은 인증이 수두룩하고 차이가 크지 않은 인증도 많아 기업의 부담이 되고 있다”며 “인증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사용료 지급하기도

과도한 인증 비용도 중소기업의 부담이다. 대부분 유효기간이 2~5년에 불과해 정기적으로 인증 비용이 발생한다. 같은 원료로 만들고 성능도 같지만 모양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증을 따로 받는 경우도 있다. 조명기구 제조업체 관계자는 “고효율 기자재 인증을 통과한 조명기구에 구매업체의 요구로 5㎝ 조금 넘는 각도조절장치를 추가했는데 인증을 다시 받으라고 해서 200만원을 추가로 냈다”고 말했다.

건축자재의 하나인 고무발포단열재도 원료는 같지만 제품의 크기가 다양해 수백 개의 파생 제품마다 인증 수수료가 부과된다. 예컨대 환경표지 인증은 변형된 제품 품목당 5만원을 내야 한다. 또 한 번 인증받으면 유효 기간이 끝날 때까지 매년 사용료도 내야 한다. 사용료는 연간 최대 1100만원이다.

사무용 가구 제조업체 관계자는 “보통 중소업체의 영업이익이 매출의 5% 수준인데 환경인증을 받고 유지하기 위한 비용만 매출 대비 최고 3%에 달해 연구개발비용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인증제도

인증은 제품과 서비스 등이 특정 요건을 충족시켰는지를 정부가 정한 시험기관이 보증하는 제도다. 전기용품 안전 인증 등 국민의 안전, 보건 등과 관련한 의무 인증은 반드시 취득해야 한다. 반면 신기술 인증 등 임의 인증은 강제성이 없다. 하지만 취득하면 공공 조달시장에서 우선구매 대상에 포함되는 등 혜택을 준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