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ICBM'으로 경제의 판을 바꿔라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2011년 이후 5년 만에 물거품이 된 무역 1조달러, 9년째 2만달러의 덫에 걸려 있는 1인당 국민소득, 한때 9%를 웃돌다 2%대까지 하락한 잠재성장률까지 온통 잿빛이다. 중국에 추월당한 철강·정유, 석유화학, 자동차, 스마트폰의 세계 시장 점유율, 세계의 히든챔피언 2730개 중 23개에 불과한 중소기업 수준, 한때 10%를 넘다 최근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하는 수준까지 추락한 기업의 영업이익률, ‘가마우지 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비아냥 받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의 국산화 비율도 한국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압축적인 고도 성장과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보여 온 한국 경제는 취약한 기업성장 생태계, 제조업 고도화 지체, 중국 및 일본과 주력 산업에서의 경쟁 격화, 침체된 세계 경제와 패러다임의 전환 등으로 사면초가 상황이다. 한국의 강점이었던 하드웨어 중심의 기술과 관리, 양질의 노동력, 후발자로서의 이점과 같은 과거의 성장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전대미문의 환경 속에 놓여 있다.

이제 경제를 재도약시킬 산업혁신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판(플랫폼)이 필요하다. 기업과 기술, 인재 양성, 그리고 제도적 플랫폼을 바꾸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 사물인터넷(IoT), 빅 데이터, 클라우드 기술로 인해 산업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스마트 산업혁명의 초기단계인 만큼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을 적극 활용하고 산업혁신과 관련된 핵심 주체들이 공유할 수 있는 혁신 플랫폼을 마련한다면 승산은 있다.

먼저 기술과 기업의 새로운 플랫폼 구축이다. 과거 초고속 통신망 구축이 한국 산업의 정보화 기반을 제공한 것과 마찬가지로 ICBM(사물인터넷·클라우드·빅데이터·모바일)을 산업혁신의 고속도로로 조성해 제조업에 접목함으로써 산업 기반을 고도화해야 한다. 생존 가능성이 낮은 기업을 용이하게 퇴출시키고, 그 공백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슘페터형 창업’으로 채울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규제자유구역 설치와 거점별 창업중심대학을 운영해 창업생태계의 인적 풀을 확대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둘째, 우수인력 양성을 위한 공학교육 혁신과 이민정책의 획기적 전환을 통한 외국 기술인력의 유입 등 인재양성 플랫폼 마련이 필요하다. 저출산 고령화로 2020년 이후 매년 40만명씩 급감할 것으로 추정되는 생산가능인력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3개의 위원회와 16개 부처에 분산된 외국 인력 정책의 전략적 연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닥칠 기회, 위협요인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위해 상시적 미래예측과 미래전략을 담당하는 미래전략 플랫폼의 구축이다. 우리는 포퓰리즘적 입법 성향과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 등으로 취약한 제도경쟁력이 경제와 국가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속화되는 사회 변화와 기후 변화, 인구구조 변화, 자원 고갈 등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의 장기비전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중립적 싱크탱크형 행정조직으로 가칭 ‘국가미래전략원’ 설치를 제안하고 싶다. 미국, 영국, 프랑스, 핀란드 등은 단순한 국가 기획을 넘어 국가의 미래전략을 수립하는 기구를 운영 중이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준비 없이 대통령 임기에 따라 한시적이고 형식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거나 해외 보고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한국이 처한 상황에 맞으면서 상시적 대응이 가능한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권한의 범(汎)부처 조직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국가미래전략원 설치에 대한 공론화가 진행되길 바란다.

오영호 <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