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캐나다 1위 제약회사인 밸리언트 주가가 19% 급락했다. 장중 한때 40%까지 폭락하기도 했다. 이날 공매도리포트 전문회사 시트론리서치가 “밸리언트가 분식회계로 매출을 부풀린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 투자자들을 패닉으로 몰고간 것이다.

밸리언트 최고경영자(CEO)가 나서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1주일여 만에 이 회사 주가는 36% 빠졌다. 그 사이 증발한 시가총액 규모는 300억달러(약 34조원)에 달한다.

올해 뉴욕증시에서 바이오주 돌풍을 주도했던 밸리언트가 보고서 한 장에 휘청하자 공매도 리서치회사에 월가 투자자들의 관심이 다시 쏠리고 있다.

○1주일여 만에 시총 34조원 증발

바슈롬 등 자회사를 거느린 밸리언트는 각종 항암치료제 등 전문의약품을 제조하는 대형 제약회사다. 2010년 20달러 수준에서 횡보하던 이 회사 주가는 성장성이 부각되면서 급등하기 시작해 올해 8월 263달러로 최고치를 찍었다.

앤드루 레프트 시트론리서치 대표
앤드루 레프트 시트론리서치 대표
15년차 공매도 전문가인 앤드루 레프트 시트론리서치 대표(45)는 승승장구하던 밸리언트 실적에 의심을 품고 회계장부를 파고들었다. 그는 밸리언트가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는 계열 판매사 필리도를 이용해 매출을 과장했다는 확신을 갖고 지난달 21일 시트론리서치 홈페이지에 보고서를 공개했다. 레프트는 전날 종가 146달러였던 밸리언트의 적정 주가를 50달러로 제시했다. 증시에서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밸리언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보유 주식을 앞다퉈 투매했다.

밸리언트는 지난달 30일 93달러로 거래를 마쳐 100달러 선이 깨졌다. 결국 밸리언트는 필리도와의 제휴를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 보도했다.

증권사에서 주식매매 업무를 맡았던 레프트는 2001년부터 공매도 리포트를 쓰고 있다. 그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제약업계엔 불투명한 회계처리가 관행처럼 퍼져 있다”며 “나는 코끼리 사냥꾼”이라고 말했다.

○약세장에서 불안심리 조장 역효과도

공매도 전략은 2011년 6월 카슨 블록 머디워터스 대표(39)가 중국 기업 시노포레스트를 공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았다. 상하이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블록은 미국 캐나다 등에 상장한 중국 회사들의 불투명한 회계장부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중국 최대 벌목업체였던 시노포레스트는 “분식회계로 삼림 자산과 매출을 과장했다”는 머디워터스의 보고서가 나온 뒤 주가가 74% 폭락했다. 캐나다 증시에서 퇴출된 시노포레스트는 이듬해 4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대니얼 유 고담시티리서치 대표
대니얼 유 고담시티리서치 대표
최근엔 뉴욕 맨해튼에서 활동 중인 대니얼 유 고담시티리서치 대표(33)가 공매도 업계의 새 얼굴로 떠올랐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의 그는 펀드매니저를 거쳐 2012년 영화 ‘배트맨’의 배경도시 이름을 딴 공매도 리서치회사를 세웠다.

고담시티는 지난해 7월 스페인 무선인터넷 사업자인 고웩스가 매출을 10배 부풀렸다고 발표했다. 고웩스는 1주일 만에 “지난 4년간 회계를 조작했다”고 시인하고 CEO를 교체하는 등 백기투항했다.

공매도 분석가들은 자신이 ‘증시 파수꾼’이라고 주장하지만 증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만만치 않다. 홍호덕 HDC자산운용 주식본부장은 “투자심리가 불안한 장세에서 공매도 리포트는 단기 변동성을 크게 키워 증시 전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며 “정보력이 약한 개인투자자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공매도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파는 투자 방식. 예상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주식을 되사 갚아 차익을 챙길 수 있다. 주식매매를 활성화하는 장점이 있지만 약세장에서 공매도 물량이 쏟아지면 주가 하락폭을 더 키우는 부작용도 있다. 국내 증시도 공매도 투자를 허용하고 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