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건설 회계절벽 사라져야" VS "공사진행률 공시는 과도한 규제"
조선 건설 등 수주산업에 급작스럽게 대규모 손실이 발생해 시장에 충격을 주는 이른바 ‘회계절벽’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올 들어 4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발표한 대우조선해양은 국책은행에서 4조원을 수혈받는 등 국가 경제에도 큰 주름살을 드리우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대우조선해양 사태 재발 방지 대책으로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제고방안’을 발표, 강도 높은 회계·공시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3일 서울 중림동 본사에서 김용범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윤현철 삼일회계법인 감사 대표,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유병세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전무, 강경완 대한건설협회 건설회계실장 등과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제고방안’의 기대효과와 정책 실현 방안을 들어보는 좌담회를 열었다.

조선·건설업계는 수주 위험정보 공시 의무, 핵심감사제(KAM) 도입 등이 개별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며 정책적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회계 전문가들은 수주산업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으로 맞섰다.
감독당국이 수주산업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회계·공시 규제 강화를 예고한 가운데 3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전문가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김용범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강경완 대한건설협회 건설회계실장, 유병세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전무, 윤현철 삼일회계법인 감사 대표.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감독당국이 수주산업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회계·공시 규제 강화를 예고한 가운데 3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전문가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김용범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강경완 대한건설협회 건설회계실장, 유병세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전무, 윤현철 삼일회계법인 감사 대표.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조일훈 증권부장(사회)=이른바 ‘회계절벽 사태’가 터진 것은 업계가 위험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 아닌가.

▷강경완 대한건설협회 건설회계실장=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내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해외 사업장은 대부분 오지(奧地)여서 예측 불가능한 비용이 많았다. 공정이 70~80% 올라온 뒤에야 비용을 확정하다 보니 한꺼번에 손실이 발생했다.

▷유병세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전무=국가 경제에 물의를 일으킨 점은 반성한다. 하지만 해양 플랜트는 과거 경험해보지 못한 공정이 많아 수익과 비용 산정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김용범 증선위 상임위원=손실 발생이 문제가 아니라 손실을 적시에 회계처리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투자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회계정보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갖게 됐고 회사도 주가 변동, 평판 추락 등의 타격을 받았다.

▷사회=앞으로 수주산업에 속한 기업들의 공시 의무가 확대되고 수익 인식 방법도 까다로워진다. 해당 기업의 애로도 많을 것 같다.

▷유 전무=사업장별로 공사 진행률과 미청구 공사액, 충당금을 일일이 공시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다. 발주처는 프로젝트명조차 공개되는 것을 꺼린다. 기업들이 정보공개 수위를 놓고 발주처와 실랑이하는 사이에 경쟁사에 영업기밀이 노출될 수도 있다.

▷강 실장=분기마다 총예정원가를 재평가해 내부감사기구에 보고하도록 돼 있는 부분도 부담스럽다. 웬만한 플랜트 건설 현장에는 5만개 이상의 공정이 있다. 모든 공정을 통제하며 위험을 예측하긴 어렵다. 반기 또는 1년에 한 번 재평가하는 것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김 상임위원=조선·건설사 7곳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동의한 사안이다. 총예정원가를 공시하지 않는 대신 분기별로 재평가해 내부 감사기구에 보고하는 것은 기밀 유출 우려가 크지 않다고 해서 도입한 것이다. 본사 재무회계 인력들이 수백개 현장을 장악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방안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내년 수주산업에 KAM을 조기 도입하는 것은 어떻게 평가하나.

▷강 실장=KAM은 가장 선진적인 감사제도다. 반면 수주산업의 회계 인프라는 가장 취약하다. 가장 취약한 산업에 가장 선진적인 제도를 도입하면 감당이 안 된다.

▷윤현철 삼일회계법인 감사 대표=KAM은 좋은 제도지만 지금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될지 의문이다.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회계사들에게 KAM을 적어넣으라고 하면 책임문제 때문에 서술하기 힘들다. KAM을 먼저 도입한 영국은 외부감사인에게 분식회계에 대해 직접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재무정보 이용자의 전문성을 따져야 한다. 미국은 애널리스트가 일반투자자에게 기업의 재무정보를 독립적으로 풀어준다. 우리는 중간지대가 없기 때문에 일반투자자에게 감사보고서 수준을 맞춰야 한다. KAM은 일반투자자들의 심각한 정보 비대칭을 완화해줄 수 있다.

▷사회=그동안 외부감사인의 책임은 강화된 반면 상대적으로 내부 감사기구의 역할에 대해선 논의가 부족하지 않았나.

▷정 교수=기업, 회계법인, 감독당국 등 주체별로 계속 개혁해왔지만 여전히 분식 사고는 터진다. 주체별 개혁은 그만하고 주체 간 네트워크를 긴밀하게 하는 ‘회계 그물망’을 조직해야 한다. 그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내부 감사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KAM은 주체별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고리 역할을 할 것이다.

▷윤 대표=회계사가 힘이 없다. 선진국에선 감사인을 선정할 때 감사인의 전문성을 따지지만 한국에선 감사비용이 얼마나 싼지를 따지는 게 현실이다. 회계사의 직업적 자부심이 사라졌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각 주체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김 상임위원=회계의 출발은 기업이다. 무엇보다 기업과 경영진이 경각심을 갖고 이해관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부 감사위원회는 경영진을 견제하는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하고 외부감사인은 독립적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수주업계에서 건의한 내용은 연말까지 검토해서 보완하겠다.

정리=하수정/이유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