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역사교과서 국정화, 품질로 평가해야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모두 소중한 가치다. 역사교육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시장경제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왜곡한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고 민족 비극과 분단의 책임에 양비론으로 물타기를 한다면 그것은 역사교육의 신뢰성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처사다.

일부 역사교과서는 개발도상국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모델과 기업가 정신에 대한 평가보다는 일부 기업인들의 비리에 더 초점을 맞췄다. 장기 세습독재 아래에서 온 주민을 극빈자로 내모는 북한의 ‘어둠’에 대해서는 가볍게 취급하고 한국의 경제개발은 ‘개발독재’에, 선택과 집중을 기본으로 하는 ‘불균형 성장전략’은 정경유착과 특혜에 더 초점을 맞췄다. 반면에 북측의 ‘자주적 외교노선’을 거론하면서 외교적 고립과 폐쇄경제의 실패에 대해서는 가볍게 기술했다.

그간 검인정을 통해 다소의 시각교정이 있었지만 다양성을 넘어선 불균형은 아직도 심각하다. 역사학자 E H 카의 ‘현재주의’가 오늘날 학문적 주류이긴 하나 역사를 오늘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근현대사 특히 해방 이후 현대사는 묻혀 있는 사실(史實)이 아니라 현재라는 햇빛 아래 드러나 있는 사실(事實)의 편린들의 합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현대사는 역사가의 판단보다 사실의 객관성을 더 필요로 한다.

살아 있는 역사로서 현대사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를 아우르는 다학제적 공유물이다. 인문학으로서 역사이긴 하되 사회과학을 포함한 통섭의 분야이지 역사학자들만의 배타적 영역은 아니다. 현대사가 역사학자들의 ‘역사적 시각’에서 통합되고 걸러질 필요는 있지만 그것은 역사학자들이 균형 잡힌 시각, 통찰이 가능한 식견, 학파와 인맥에서 벗어난 순수성을 지녔을 때만 합당하다.

불균형적 시각을 가진 일부 역사학자들이 역사교과서 집필을 주도하고 일부 교사가 편견과 왜곡의 눈으로 역사를 가르친다면 역사교육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실패한 시장’이다.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을 평가할 때 오로지 ‘균형발전’과 ‘경제민주화’만을 유일한 잣대로 들이대는 사람들은 이런 ‘시장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말이다. 역사교육에서 시장실패의 피해자는 학생이며 또한 국민이다.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의 의식에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경제성장에 대한 자긍심은 없을 것이며 그런 젊은이들의 미래도, 국가의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역사교육은 공공재다. 잘못된 역사교육은 소비자(학생)의 의식을 병들게 하고 국기(國基)를 흔드는 부(負)의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역사교육이 공공재라고 해서 민간에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집필자의 잘못된 현대사 기술과 교육현장에서 일부 교사들의 오도가 신뢰를 저버린 것이 문제다. 따라서 교과서 시장에서 올바르고 균형잡힌 교과서들이 공정하게 경쟁을 할 수 있는지 아니면 특정한 그룹들에 의해 시장 접근이 방해받고 있는지 여부가 국정화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국정화가 최선이 아닐 수 있지만 역사교육 내용의 균형성과 적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면 취약성을 드러낸 검인정 제도를 대체할 ‘차선’일 수 있다. 시장실패의 정도가 심각한 상황에서 국정화를 거부하려면 그에 앞서 ‘올바른 역사’ 집필 결의가 선행돼야 하고 국정화보다 더 확실하게 객관성과 타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과 객관성을 견지한 집필자가 역사를 기술했어야 했다. 국정화의 잘잘못은 오직 결과와 품질로 평가해야 한다.

한영수 < 전주비전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