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누가 헬조선을 만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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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안전·갑질에 대한 분노
5만 달러 환상, 2만 달러 현실 부조화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5만 달러 환상, 2만 달러 현실 부조화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 ‘불반도(불지옥 한반도)’ 같은 신조어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금수저’ ‘흙수저’에 ‘똥수저’까지 더해졌다. 태어날 때 물고 나온 수저가 인생을 결정한다 해서 ‘성수저설’이다. 그래서 ‘다태호(다시 태어나면 호날두)’가 되고 싶단다.
‘헬조선 10계명’도 있다. 빚 만들지 말고, 결혼해도 애 낳지 말고, 빠질 수만 있으면 군대는 가지 말라는 식이다. 흙수저에게 대한민국이 헬조선인 이유는 74가지나 될 정도다. 헬조선 관련 사이트만 10개가 넘는다. 재앙의 한국을 탈출한다는 앱게임까지 등장했다.
좌절이 극에 달하면 자조(自嘲)로 바뀐다. 헬조선 시리즈는 청년백수 100만명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성수저설은 기회 균등에 대한 의구심이다.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라는 안전 불신, 알바를 경험해 보니 갑질에는 재벌은 물론 중산층·서민도 예외가 없다는 분노까지 버무려졌다.
이런 청년들에게 더 노력하고 눈높이를 낮추라고한들 ‘꼰대’의 잠꼬대로 듣는다. 북한, 시리아 난민을 거론하며 배부른 소리라고 훈계하는 어른들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었다. 청년들에겐 비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베’나 ‘오유’처럼 정치성향이 뚜렷하지도 않다. 극과 극이 상통해 좌우 구분이 어려운데 상하 구분은 확실한 게 헬조선이라는 청년들이다.
물론 헬조선은 취업전쟁의 산물이다. 70%가 대학을 나와 괜찮은 일자리 10%를 놓고 의자 뺏기 게임을 벌이는 중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뭐든지 비교하고 등수를 매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심리코드가 숨어 있다. 늘 다른 사람, 다른 가정,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게 한국인이다. 문제는 비교를 해도 위쪽만 본다는 점이다. 엄친아, 아친남(아내 친구 남편)이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한국인의 비교 본능은 이만큼 발전한 동인이었지만 이제는 자승자박이 돼 간다. 더구나 지금 20~30대는 20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 성장한 세대다. 이들의 눈높이는 온통 서구 선진국에 맞춰져 있다. 부모가 그렇게 키웠고 미디어가 부추겼다. 중동에 나가보라니까 ‘네가 가라 중동’이란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현실은 2만달러인데 기대는 5만달러에 가 있다. 차라리 OECD를 탈퇴해야 덜 할까. 현실을 개선하든지, 환상을 깨는 것 외엔 해법이 없다. 고령화와 저성장이란 현실은 피하기 어렵다. 노동개혁은 기득권에 막혀 있고 정치는 나라 망치는 길로 이끌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다 싫다면 이민뿐이다.
청년들이 꼽는 천국은 어딜까. 미국? 북유럽? 속칭 ‘천조국(미국)’에서 유색인종으로 살며 그 비싼 병원에 가봤어도 그럴까. 북유럽에서 소득 40%를 세금으로 떼이고 나면 연말정산 파동이 그리울 것이다. 생활까지 감시하는 싱가포르, 집값이 세계 최고인 홍콩, 심심하기 짝이 없다는 뉴질랜드는? 지상낙원은 북조선의 헛구호일 뿐, 세상 어디에도 없다.
최근 두 성진이가 눈길을 끌었다. 쇼팽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은 몰입 또 몰입했다. 그가 한국에 남았으면 음악학원 강사나 했을 거라고 비아냥대봤자 내 처지가 달라지진 않는다. 청춘FC의 오성진은 축구에 대한 간절함에 피로골절조차 숨겼다. 포장마차 하는 홀어머니 때문이다. 누구나 삶은 고단하다. 그래도 부모 탓만은 말자. 자중자애하지 못하는 마음속에 불지옥이 커져 간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헬조선 10계명’도 있다. 빚 만들지 말고, 결혼해도 애 낳지 말고, 빠질 수만 있으면 군대는 가지 말라는 식이다. 흙수저에게 대한민국이 헬조선인 이유는 74가지나 될 정도다. 헬조선 관련 사이트만 10개가 넘는다. 재앙의 한국을 탈출한다는 앱게임까지 등장했다.
좌절이 극에 달하면 자조(自嘲)로 바뀐다. 헬조선 시리즈는 청년백수 100만명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성수저설은 기회 균등에 대한 의구심이다.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라는 안전 불신, 알바를 경험해 보니 갑질에는 재벌은 물론 중산층·서민도 예외가 없다는 분노까지 버무려졌다.
이런 청년들에게 더 노력하고 눈높이를 낮추라고한들 ‘꼰대’의 잠꼬대로 듣는다. 북한, 시리아 난민을 거론하며 배부른 소리라고 훈계하는 어른들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었다. 청년들에겐 비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베’나 ‘오유’처럼 정치성향이 뚜렷하지도 않다. 극과 극이 상통해 좌우 구분이 어려운데 상하 구분은 확실한 게 헬조선이라는 청년들이다.
물론 헬조선은 취업전쟁의 산물이다. 70%가 대학을 나와 괜찮은 일자리 10%를 놓고 의자 뺏기 게임을 벌이는 중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뭐든지 비교하고 등수를 매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심리코드가 숨어 있다. 늘 다른 사람, 다른 가정,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게 한국인이다. 문제는 비교를 해도 위쪽만 본다는 점이다. 엄친아, 아친남(아내 친구 남편)이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한국인의 비교 본능은 이만큼 발전한 동인이었지만 이제는 자승자박이 돼 간다. 더구나 지금 20~30대는 20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 성장한 세대다. 이들의 눈높이는 온통 서구 선진국에 맞춰져 있다. 부모가 그렇게 키웠고 미디어가 부추겼다. 중동에 나가보라니까 ‘네가 가라 중동’이란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현실은 2만달러인데 기대는 5만달러에 가 있다. 차라리 OECD를 탈퇴해야 덜 할까. 현실을 개선하든지, 환상을 깨는 것 외엔 해법이 없다. 고령화와 저성장이란 현실은 피하기 어렵다. 노동개혁은 기득권에 막혀 있고 정치는 나라 망치는 길로 이끌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다 싫다면 이민뿐이다.
청년들이 꼽는 천국은 어딜까. 미국? 북유럽? 속칭 ‘천조국(미국)’에서 유색인종으로 살며 그 비싼 병원에 가봤어도 그럴까. 북유럽에서 소득 40%를 세금으로 떼이고 나면 연말정산 파동이 그리울 것이다. 생활까지 감시하는 싱가포르, 집값이 세계 최고인 홍콩, 심심하기 짝이 없다는 뉴질랜드는? 지상낙원은 북조선의 헛구호일 뿐, 세상 어디에도 없다.
최근 두 성진이가 눈길을 끌었다. 쇼팽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은 몰입 또 몰입했다. 그가 한국에 남았으면 음악학원 강사나 했을 거라고 비아냥대봤자 내 처지가 달라지진 않는다. 청춘FC의 오성진은 축구에 대한 간절함에 피로골절조차 숨겼다. 포장마차 하는 홀어머니 때문이다. 누구나 삶은 고단하다. 그래도 부모 탓만은 말자. 자중자애하지 못하는 마음속에 불지옥이 커져 간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