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태 씨의 ‘말과 글-나의 아뜰리에’
유선태 씨의 ‘말과 글-나의 아뜰리에’
서양화가 유선태 씨(58)는 동양과 서양, 자연과 건축, 외부와 내부, 순간과 영원, 오브제와 자연물 등의 이원적 개념을 문학적인 상상력으로 발효시켜 화면에 담는다. 대학 시절 사르트르의 ‘말과 글’을 읽은 뒤 딱딱한 인문학적 개념을 미술로 쉽게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문학 건축 경제 음악 분야에 관심을 두고 ‘인문학의 숲’으로 여행하며 보여주고 싶은 세상과 전하고 싶은 마음을 붓끝으로 잡아냈다. 그 세월이 40년이다.

무거운 인문학적 개념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유씨가 오는 29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1980년대 초 프랑스 국립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문학과 디자인, 공예, 회화를 절묘하게 혼합한 화법으로 국내보다 유럽 화단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5년 만에 여는 이번 전시회 주제는 ‘말과 글-풍경 속의 풍경’. 아스라한 유년의 기억과 풍경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응축한 그림 30여점을 비롯해 액자 모양을 크게 확대한 작품, 책장처럼 꾸민 대형 설치작품 등을 함께 보여준다.

유씨는 “축음기 자전거 사과 책 음표 등 일상의 친숙한 소재를 다양한 풍경과 접목해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책을 새처럼 공중에서 날게 하고, 축음기를 풍경 속에 배치해 관람객이 묘한 상상력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즐겼던 ‘데페이즈망(depaysement=엉뚱한 결합)’ 기법을 적절히 활용해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축음기는 입체적이어서 좋아하고, 책에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다”며 “모두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말과 글-30년의 이야기’라는 작품에는 그런 호기심으로 그간 작업한 대표작을 한 캔버스 안에 구성했다.

유씨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인문학과 회화의 하이브리드’라고 했다. 삶에는 자연의 풍경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이 순간도 역사적 기록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작품의 제목을 ‘말과 글’로 붙이는 까닭이다.

소재는 다양하지만 그림 속에는 공통적으로 자전거를 탄 남성이 조그맣게 등장한다. 작가는 “청소년 시절 자전거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런 기억도 작품에 담았다”며 “자전거 타는 사람은 나의 분신이자 자화상”이라고 설명했다.

“중학생 때 용돈을 모아 자전거를 샀어요.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강과 산, 언덕을 즐겁게 오르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자전거에는 예술가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유목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요.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큰 숲을 여행할 수 있게 하니 말이죠.”

주로 풍물시장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는 그에게 예술이 뭐냐고 묻자 “끊임없는 호기심”이라고 했다. (02)720-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