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 수요 탄탄, 빌딩 숲 한가운데 스트리트형 상가 들어서
그러나 판교 상권의 변화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향후 판교역 인근 상업 부지를 중심으로 더욱 드라마틱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지난 8월 현대백화점이 개점했고 초대형 주상복합 단지인 알파돔시티가 2018년 완공될 예정이다. 판교역 주변의 스카이라인이 완성되는 5년 후쯤이면 이 지역이 경기 남부를 대표하는 ‘메가 쇼핑 상권’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판교 테크노밸리 상권 : 점심시간이 피크…입소문 민감한 오피스 상권
‘한국의 실리콘밸리’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다. 판교 테크노밸리는 카카오·넥슨·엔씨소프트 등 국내 굴지의 IT 기업이 운집해 있다. 잘 정비된 길 위에 규칙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빌딩 숲이 시선을 압도한다. 이 빌딩 숲 한가운데 드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쉼터가 되어 주는 공간이다. 판교 테크노밸리 내부 상권에는 유스페이스·H스퀘어·삼환하이펙스 등 크게 세 개의 대형 상가 건물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그러나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이곳은 연구업무시설과 근린생활시설(상가)을 배치해 용적률 400% 이하로 최고 15층까지 지을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이다. 주로 1~2층에 상가를 배치해 ‘거리형 상권’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세 개의 상가 건물을 각자의 공간으로 분리하는 대신 산책을 즐기는 직장인들이 걸어서 세 개의 상가를 연속해 통과할 수 있도록 마치 ‘하나의 큰 공원’처럼 구성해 놓았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전형적인 오피스 상권이다 보니 업종은 주로 요식업에 쏠려 있다. 점심 식사나 회식 장소를 위한 고깃집이나 밥집이 주종을 이루고 있고 커피숍 또한 한 집 걸러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이는 SK텔레콤의 빅 데이터 비즈니스 플랫폼인 지오비전의 분석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8월을 기준으로 판교 테크노밸리 내 상가의 일평균 매출을 분석한 결과 음식 업종이 170억 원가량으로 전체 매출의 51.98%를 차지했다.
시간대별 유동인구를 살펴보면 점심시간(점유율 29.76%)이 퇴근 이후(17.24%)보다 많았다. 유동인구 대부분이 인근 직장인들로 구성돼 있어 30~40대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특징이다. 남녀의 성비 차도 두드러진다. 지난 8월을 기준으로 10대부터 60대까지 일평균 남성외 유동인구는 8383명인데 비해 여성의 유동인구는 4526명이다. 2배 정도 차이가 난다.
테크노밸리 내 상권은 8만여 명의 직장인이라는 거대한 배후 수요를 끼고 있지만 상가 점포가 밀집해 있어 점포 간 경쟁이 치열하다. 이곳에서 ‘쉐프의 무국’을 운영 중인 배진희 사장은 “전국의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다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보통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손님의 대부분이 몰리기 때문에 특히 점심시간에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점심이나 저녁 식사 무렵이면 가게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야외 테이블을 추가로 늘어놓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한 관계자는 “야외 테이블 자리를 두고 옆집 가게와 다툰 적이 여러 번”이라며 “조금이라도 먼저 눈에 띌 수 있게 입간판을 앞쪽에 세우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경쟁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기업 내의 ‘구내식당’과도 보이지 않는 경쟁을 펼쳐야 한다. 넥슨·카카오 등 젊은 IT 기업들이 주로 입주해 있는 곳이어서 구내식당과 사내 카페테리아가 잘 꾸며져 있는 곳들이 적지 않다. 배 사장은 “기업들마다 직원들에게 한식·양식·일식 등 다양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며 “심지어 이들 구내식당은 가격도 4000원 안팎으로 저렴한 편이어서 알게 모르게 인근 식당에 가격 인하 압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매출은 평일과 주말의 차이가 큰 편이다. 주말에는 아예 문을 닫는 상가들도 적지 않아 상권 자체가 다소 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말을 빼면 한 달에 영업 가능한 일수가 대략 20일 안팎으로 줄어든다. 이곳에서 도시락집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상권”이라며 “평소엔 일매출이 170만 원 정도인데 휴가나 장마철이면 그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입소문이 무섭게 빠른 곳”이라고 말했다. 한번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단골손님이 금방 늘어나지만 반대로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나쁜 소문이 도는 것도 순식간이다. 따라서 매출을 높이는 데는 ‘평판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임대료는 가게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49.5㎡(15평)를 기준으로 상가 1~2층 광장을 향해 자리한 곳은 보증금 8000만 원, 월세 300만 원에 형성돼 있다. 반면 도로변을 향해 있지만 광장이 아닌 외부를 향한 곳이나 외진 곳은 임대료가 조금 낮아진다. 보증금 5000만 원, 월세 300만 원 정도다. 상가 건물 내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건물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만 간판이 노출되는 가게들은 아예 보증금 없이 월세만 200만 원인 곳도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메인 광장을 향해 있는 점포나 빌딩 외관에 자리한 점포는 최근 1~2년 사이 빈틈없이 가게들이 들어오고 있다”며 “하지만 빌딩 내부 등 노출도가 떨어지는 곳은여전히 공실로 남아 있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판교역 상권 : 알파돔시티 공사 중…5년 후 분당 서현 넘본다
전형적인 오피스 상권으로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이른 테크노밸리 내부 상가와 달리 판교역 상권은 아직도 개발이 진행 중인 ‘미완성’ 상권이라고 할 수 있다. 판교역 상권은 판교 신도시 개발 계획 초창기 무렵부터 판교의 ‘핵심 상권’으로 꼽혀 왔다. 분당 서현역처럼 분당 신도시 내 거주민들은 물론 외부 수요까지 유입되는 ‘복합 상권’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란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분당 서현역 등과 비교해 복합 상권의 면모가 약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6~7년간 판교역 인근 상업 부지 개발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재 판교역을 중심으로 한 동안사거리와 판교역 사거리의 점포 권리금은 66㎡(20평)를 기준으로 1억 원 정도다. 하지만 권리금이 없는 가게들도 적지 않다. 판교 C부동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2008년을 전후해 상가 매매가가 치솟으면서 대부분 점포의 월세가 터무니없이 올라갔다”며 “월세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권리금을 받지 않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입지에 따라 임대료는 약간씩 차이를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보증금 4000만~7000만 원, 월세300만~500만 원 정도다. 인근 공인중개사 대표는 “기본적으로 대형 평수가 많은데다 월세가 비싸기 때문에 개인 가게보다 프랜차이즈 직영점이 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최근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곳은 판교역에서부터 판교 테크노밸리로 향하는 길목에 형성된 먹자 상권이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공실률이 70%에 이르렀던 이곳은 판교 테크노밸리 상권의 활성화와 함께 1~2년 사이 꽤 많은 점포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종이 고깃집이나 카페 등으로 쏠려 있다. 테크노밸리 내 직장인들을 주요 타깃으로 한 오피스 상권이 확장된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판교역을 중심으로 띄엄띄엄 자리해 있는 푸르지오 월드마크 단지 내 상가나 판교 아브뉴프랑 등 주상복합 단지 내 상가도 일부 살아나 주목을 끌고 있다. 상층부에 아파트가 자리 잡은 판교 아브뉴프랑은 주상복합 단지 내 상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식 스트리트형 상가’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앞세우고 있다. 이를 통해 단지 내 거주민들뿐만 아니라 외부 고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하지만 상가 규모가 크지 않아 판교역 상권 전체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데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김민영 부동산114 리서치센터팀 연구원은 “아직은 경기 남부의 핵심 상권의 기능을 단연 분당 서현이 도맡고 있다”며 “아직까지 판교역은 인근 테크노밸리 직장인과 거주민을 대상으로 한 로컬 상권의 특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인 판교역과 비교해 서현역은 이미 상권이 안정 단계에 접어든 지 오래다. 음식 업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판교역과 달리 쇼핑 시설은 물론 영화관 등 유흥 시설도 풍부하다. 이 때문에 판교·용인 등 경기 남부 거주민들까지 끌어들이는 광역 상권의 성격을 띤다. 지금은 ‘체급’ 비교가 어려운 두 상 권이지만 향후에는 판도가 뒤바뀔 확률이 높다. 지난 8월 현대백화점 개점을 시작으로 판교역 상권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현대백화점 개장 이후 주말이면 수원·수지 등에서 온 고객들이 주차를 위해 길게 늘어서는 광경을 볼 수 있다”며 “현대백화점 개점 이전과 비교해 판교역 인근의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알파돔시티까지 완공되면 그 파급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알파돔시티는 지하 7층~지상 20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와 쇼핑몰·오피스 등이 들어서는 대형 프로젝트다. 오는 11월 주거 시설인 알파리움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향후 대형 쇼핑몰 등의 개발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2018년쯤 최종 완공된다.
완벽하게 모습을 갖춘 판교역 일대에 유동인구가 유입되는 시간까지 감안한다면 상권이 완전히 무르익기까지 앞으로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판교역 상권은 현대백화점을 시작으로 서서히 분당·용인 등 경기 남부 거주민들을 흡수하는 ‘블랙홀 상권’으로 진화 중”이라며 “향후 5년 뒤에는 분당 서현을 능가하는 매머드급 복합 쇼핑 상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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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등 포화…업종 차별화 필요” 1.5기 신도시의 간판 격인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는 2003년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2만9000여 가구가 입주했고 업무지구인 테크노밸리 등 대부분의 개발이 완료된 상태다. 수도권 신도시 중 가장 집값이 비싼 신도시 중 하나다.
핵심 입지로는 지하철 분당선 판교역이 자리한 동판교 중심 상업지역을 꼽을 만하다. 최근 1~2년 사이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가 본격화되면서 현재는 은행·패스트푸드점·음식점 등이 1층에, 병원·사무실 등이 상층부에 입점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분양 가격 때문에 좀처럼 수익률이 오르지 못하고 있는데 최근 현대백화점이 문을 열면서 업종 지도가 변할 가능성이 높다.
판교 테크노밸리 내부에는 인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상권이 활성화되며 현재 평균 연 수익률이 5%를 웃돌고 있다. 다만 카페 등 일부 업종은 지나치게 많이 입점돼 경쟁이 치열한 상태다. 독점적 지위를 가지는 업종을 확인해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강여름,이지연 인턴기자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40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