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십 계약 잇단 취소…조선사 "제2 해양플랜트 쇼크"
조선사가 수주한 해양 시추장비 계약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3개월 동안 네 건의 시추장비 계약을 취소당했거나 취소했다. 3개사는 이에 따른 손실(약 6700억원)을 3분기 실적에 추가로 반영했다.

당초 흑자를 냈다고 발표한 삼성중공업마저 100억원 적자로 수정돼 조선 ‘빅3’가 나란히 적자를 냈다. 이들 3사가 건조 중인 시추장비는 23척(계약금액 14조9100억원)에 이른다. 계약 취소가 이어질 경우 조선업계에 ‘제2의 해양플랜트 쇼크’가 닥칠 것으로 우려된다.

◆잇따른 계약 취소에 ‘빅3’ 휘청

시추장비 계약 취소는 지난 8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대우조선은 발주사가 중도금을 납부하지 않자 드릴십(이동식 시추선) 1척 건조 계약을 해지했다. 한 달 뒤에는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이 반잠수식 시추선 계약을 취소당했다. 발주사는 납기일이 지나도록 건조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하고, 1억6800만달러(약 1760억원)에 달하는 선수금과 이자를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에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서 계약 해지가 일어났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3분기 실적 발표 직후에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두 회사는 정정공시를 통해 실적을 수정해야 했다. 현대중공업은 3분기 영업손실 규모가 6784억원이라고 발표했지만 8976억원이라고 다시 공시했다. 2192억원을 손실로 반영한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앞서 삼호중공업의 계약 취소와 관련해 1770억원을 손실로 잡았다.

삼성중공업은 당초 3분기에 영업이익 846억원을 냈다고 공시했지만, 946억원의 대손충당금을 반영해 100억원의 적자를 냈다고 수정했다. 대우조선은 약 1800억원을 손실로 반영했다. 3개사가 책정한 계약 취소로 인한 손실 규모는 6700억원에 이른다.

◆시추장비 계약만 취소되는 이유는

최근 이어지는 계약 취소는 유독 시추장비 건조 계약에서만 발생하고 있다. 해양플랜트는 크게 시추장비와 생산설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시추장비는 원유를 채취하기 위해 해저에 구멍을 뚫는 일을 한다. 드릴십, 반잠수식 시추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조선업계에서는 시추장비를 발주한 시추업체가 장비를 활용할 사업을 따내지 못하자 인도 지연을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시추업체는 에너지기업으로부터 시추사업을 따내지 못하면 보유 장비를 놀려야 한다”며 “저유가가 계속되면서 시추사업이 줄어들자 시추업체들이 장비를 사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은 각각 1척, 9척, 13척의 시추장비(계약 취소된 장비 제외)를 건조하고 있다.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하면 131억달러(약 14조9100억원)에 이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분기 대규모 적자는 건조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한꺼번에 반영하다 보니 생겼고, 이는 어느 정도 해결된 상황”이라며 “시추장비 계약 취소는 저유가가 계속되는 한 언제 어떤 형태로 이뤄질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