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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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절정에 이른 11월의 오전, 대전 도마동 배재대 교정에서 붉은색 저고리와 회색 치마의 한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쪽찐 머리의 한 여성이 단풍나무 아래서 가야금을 타고 있었다. 정갈하고도 날렵한 가야금 소리가 바람에 떠도는 낙엽처럼 공기를 휘감다 땅으로 내려앉았다.

‘외국인 가야금 연주자’로 잘 알려진 조세린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45·사진). 언뜻 보면 그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24년째 가야금에 매진해 온 그는 한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했다. “가을에 맞는 한복을 고르려 했는데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다”며 활짝 웃는 조세린 교수의 얼굴에서는 ‘이방인’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실생활에서 가야금을 거의 접하지 못하던 기자가 ‘이방인’같이 느껴졌다.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예술인

조세린 교수의 이름은 네 개다. 영문명과 일본식 이름, 한국식 이름, 한자 이름이다.

첫 번째는 ‘미국인으로서의 이름’인 조슬린 클라크(Jocelyn Clark)다. 알래스카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매우 좋아했다. 세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으로 피아노와 클라리넷, 오보에 등을 배웠다. 알래스카 원주민 언어로 된 노래와 전설도 자주 접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일찍 눈을 떴다. “어릴 때 주말마다 알래스카 원주민이 사는 지역과 박물관에 갔어요. 비록 말은 달라도 왠지 끌렸고,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매우 보편적인 삶의 진리란 걸 알게 됐죠. 다른 나라 문화에 별 거부감이 없었던 것도 그때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어요.”

고교 때 일본 현악기 고토를 배우면서 조세린 교수는 자신의 진로를 아시아 음악으로 정했다. 그는 “고교생이던 1980년대 후반에 고토를 처음 봤는데, 13개 현이 내는 음색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며 “당시 일본 정부는 미국 주요 고교에 고토와 고토 교사를 보내 일본 전통음악을 전파하는 데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일본 요코하마와 홋카이도에서 정식으로 고토를 배웠다. 이렇게 해서 두 번째 이름 ‘조세린(ジョセリン)’을 얻었다. 자신의 이름을 가타카나로 옮긴 것이다.

고토에 한창 열중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중국 현악기 쟁과 칠현금을 알게 됐다. 이번엔 21현의 쟁에 빠져들었다. 1990년 중국 난징으로 날아갔다. 난징과 베이징에서 쟁과 칠현금, 서예를 익혔다. “웨슬리언대에서 일본학과 중국학을 복수전공했습니다. 음악을 배우다 보니 자연히 그 나라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졌죠. 일본어와 중국어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가야금을 접한 건 우연이었다. 1992년 백인영 선생의 가야금 공연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그는 가야금이 자신의 ‘최종 목적지’가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가야금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렸다.

일본어와 중국어엔 능통했지만 한국어는 한마디도 모르던 조세린 교수는 이듬해 스물두 살에 한국 국립국악원에 들어갔다. 이름은 일본에서 쓰던 가타카나식을 그대로 한글로 옮겼다. 세 번째 이름 ‘조세린’이었다. “이왕이면 한자 이름도 만들자”는 생각에 자전을 뒤져 마음에 드는 한자를 골라 ‘趙世麟’이라고 스스로 지었다. 네 번째 이름이었다.

고토, 쟁 거쳐 가야금으로

[人사이드 人터뷰] 조세린 "이 아름다운 가야금 선율…한국인 삶에 더 녹아들었으면"
가야금의 세계는 고토, 쟁과는 또 달랐다.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연습할 때마다 손끝에서 피가 났다. 한국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본어로 교습을 받았다. “당시 국립국악원에서 가르치던 선생님이나 나이 많은 학생이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젊은 시절을 보낸 분들이라 일본어를 잘했어요. 그래서 한국어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일본어로 소통했어요. 말이 잘 안 통하니 음을 직접 익히는 데 중점을 뒀죠. 음의 세계에선 언어의 장벽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부끄러웠죠. 한국 음악을 한국어로 배우지 못한다는 건.”

덕성여대와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이지영 서울대 교수와 인간문화재 지애리 선생, 강정숙 선생을 사사했다. 가야금 산조의 주요 유파 중 하나인 성금연류 창시자 성금연 선생의 딸 지성자 선생에게는 가야금 산조를, 강은경 선생한테는 가야금 병창을 배웠다.

“강정숙 선생님 댁에서 2년 동안 살았어요. 가야금과 판소리를 같이 공부하면서 그 안에 깃든 장단과 억양, 언어학적 특성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야금 병창에 등장하는 판소리 가사와 중국문학 간 관계를 주제로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저는 하버드대 학위를 받기 전이든 후든 상관없이 가야금을 똑같이 대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저를 아주 다르게 대했다는 것이죠. 그 전엔 ‘그저 취미로 배우는 외국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조세린 교수는 “한국 전통음악에서만큼은 한국인이 오히려 외국인이 되는 느낌”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왜 다 같은 음악인데 서양 음악 위주인 교과서 이름은 ‘음악’이라 하고, 한국 전통음악은 ‘국악’이라 따로 칭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삶 속에서 전통음악을 숨 쉬듯 즐긴 적이 없으니 낯선 게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에서 음악을 공부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한국은 지나치게 ‘핏줄’에 얽매이는 것 같아요. 정작 한국인은 한국 음악을 즐기지 않으면서 외국인이 한국 음악을 한다 하면 이상하게 보죠. 그런 점에서 중국과 일본은 한국과 달라요. 자국 문화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국 테두리로 묶거든요. 그들은 문화로 나라를 정의할 줄 알아요. 이건 국가주의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한국 전통음악이 더 잘 알려지고 세계화하려면 한국인 스스로 자국 음악을 아끼고 그 아름다움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난 끝없이 배워야 하는 학생”

조세린 교수는 얼마 전 큰 경사를 맞았다. 지난 9월 경북 칠곡에서 열린 ‘제4회 향사 가야금병창 전국대회’에서 ‘백발가’로 신인부 개인부문 금상을 받았다. 그는 “판소리할 때 아직 발음이 부정확한 게 많고, 계속 배우는 ‘신참’이기 때문에 신인부에서 입상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영광이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2008년부터 배재대에서 동아시아 철학사상과 비교 미학을 강의 중인 그는 교수 업무와 공연을 병행하며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단독 연주뿐만 아니라 다국적 혼성그룹인 ‘크로스사운드’를 결성해 한국 전통음악과 현대음악 간 조화를 꾀하고 있다. “음악의 세계엔 국경이 없고, 어느 나라에 살든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한국 전통음악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조세린 교수의 신념이다.

“저는 끝없이 배워야 하는 학생입니다. 전국대회에 참가한 것도 그런 배움의 일부죠. 가야금은 이제 제 인생의 모든 것이 됐습니다. 한국 전통음악에 담긴 뜻과 마음을 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정형과 파격을 동시에 추구하는 산조의 정신처럼 더 자유롭고 넓게 가야금 가락을 펼치고 싶어요.”

■ 가야금 산조의 세계
한국 대표하는 기악 독주…즉흥적 연주 기법 돋보여


가야금 산조(散調)는 장구 반주를 곁들인 가야금 연주곡이다. 한국 전통음악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악 독주로 꼽힌다. 19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됐다.

일반인은 가야금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연주 형태지만,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 말 김창조와 한숙구 등 가야금 명인들이 연주를 시작하면서 10여개 고유한 유파를 형성하며 전승됐다.

즉흥성이 강하고, 유파별로 특성도 조금씩 다르지만 장단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틀을 갖추고 있다. 가장 느린 장단인 진양조로 시작해 중모리와 중중모리, 자진모리 순으로 진행하다가 가장 빠른 장단인 휘모리로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 형태다. 여기에 굿거리 또는 세산조시 장단이 추가될 때도 있다. 오른손으로는 현을 뜯거나 튕기고, 왼손으로는 줄을 강하게 떨거나 흘려 내리고, 밀어 올리는 등의 농현(弄絃)을 통해 특유의 생동감을 표현한다. 한 곡조를 ‘바탕’이라 하며, 한 바탕을 연주하는 데 보통 30~60분 걸린다.

곡조 이름은 최초 연주자와 전승자 이름을 따서 ‘~류(流)’로 지어진다. 성금연류와 최옥산류 김죽파류 심상건류 김병호류 김종기류 김윤덕류 강태홍류 등 8개 유파가 대표적으로 연주된다. 이 외에도 아직 전해지지 않은 유파 발굴 및 새로운 유파 창조가 계속되고 있다. 가야금 전공자들은 모든 유파를 배운다.

가야금 병창(竝唱)은 가야금 산조가 만들어진 시기에 함께 등장했다. 가야금을 연주하며 판소리나 단가의 유명한 대목을 따로 떼어 부르는 것이다. 가야금과 판소리에 모두 능해야 하기 때문에 수련 과정이 까다롭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