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양안 첫 고위급 회담도 열린 곳…"중국의 모델국가"

7일 중국과 대만이 1949년 분단 이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연 정상회담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양안(兩岸)이 아닌 동남아 강소국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양국 정상이 상대국을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싱가포르가 대안으로 선택된 이유는 화교의 나라로서 양국과 모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 나라를 묶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연결고리는 민족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이날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과 만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며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한 만큼 중국계가 인구의 70%를 넘는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모습은 일단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

싱가포르가 역내 외교를 주도하는 강소국인데다 중국, 대만 양쪽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좋은 명분을 제공한다.

류훙(劉宏) 난양기술대 인문사회학장은 AP통신에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열겠다는 결정은 그 자체에 중요성이 있다"며 "국제적 중추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는 건 중국과 대만 모두에 좋은 밑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인구가 대만의 4분의 1 수준인 550만명뿐인 작은 나라지만, 싱가포르가 중국이 닮고자 하는 일종의 '모델국가'라는 점도 최적의 회담 장소로 볼 수 있는 근거라고 AP통신은 지적했다.

식자율이 97%에 달할 정도로 교육수준이 높고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와중에도 그럭저럭 경제를 꾸려 나갈 만큼 부유할 뿐 아니라, 반(半)독재적인 정부를 둘러싸고도 큰 잡음이 나지 않는 '유순한' 나라라는 점에서다.

게다가 중국과 싱가포르는 올해 3월 타계한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李光耀)라는 거물의 존재를 바탕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리 전 총리는 중국이 서방으로부터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유교적 원칙이나 권위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며 중국을 옹호하는 등 중국과 서방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고 AP는 전했다.

또한 리 전 총리는 1970년대 연로한 마오쩌둥(毛澤東)을 만난 마지막 외국 고위인사들 중 하나였으며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이 '스승'으로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분단 후 44년 만에 처음 열렸던 역사적인 양안 고위급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배경에도 리 전 총리가 큰 역할을 했다.

1993년 싱가포르가 주선한 왕다오한(汪道涵)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 회장과 구전푸(辜振甫) 대만 해협교류기금회 이사장의 회담은 양안 관계 해빙에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받는다.

22년 전 이 회담이 열렸던 하이황(海皇)빌딩은 이번 정상회담 장소인 샹그릴라호텔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리 전 총리가 이 회담을 중재한 데 이어 이번 시진핑-마잉주 정상회담을 리 전 총리의 장남인 리셴룽(李顯龍) 현 싱가포르 총리가 주선하면서 인연은 이어졌다.

경제적으로도 중국과 싱가포르는 가까운 관계다.

싱가포르는 2013년과 작년 연속으로 중국의 최대 투자자다.

1990년부터 작년까지 중국에 대한 싱가포르 투자액은 모두 723억 달러(약 82조6천억원)에 달한다.

시 주석은 이번 방문 기간 토니 탄 대통령, 리 총리와 만나 양국의 전방위적 협력 관계를 지키기로 합의했다.

시 주석은 양국의 정치적 상호신뢰 증진과 양국의 이익을 위한 실질적인 협력 강화를 요청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양국은 2009년 발효된 포괄적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양국 무역 증진과 경제협력에 도움되는 쪽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이런 내용은 시 주석과 리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양국이 서명한 합의문에 포함됐다.

또한 중국과 싱가포르는 1994년 쑤저우(蘇州) 공단, 2008년 톈진(天津) 환경도시 개발에 이어 제3차 중국-싱가포르 정부간 계획을 시행할 지역으로 중국 충칭(重慶)을 지정했다.

충칭 프로젝트는 금융서비스, 항공, 교통, 물류, 정보통신기술 등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고 싱가포르 무역산업부는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