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일본 증시 원동력 '니사'(NISA)를 찾아서…한국형ISA 과제는
# 지난 3일 도쿄 최대 번화가로 꼽히는 긴자 4번지 미쓰코시 백화점 주변. 공휴일인 '문화의 날'을 맞아 쇼핑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였다.

상점마다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에선 기다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튿날인 4일 젊은이들의 장소로 불리는 신주쿠 역시도 긴자 거리의 활기찬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신주쿠와 오다이바, 오테마치 등 주요 지역에선 각종 건설 공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2012년부터 시행한 아베노믹스 덕분에 최근 일본 경제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엔저 효과로 기업 실적이 좋아졌고 이는 고용 확대와 소비 증가로 이어져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경제 회복 분위기는 증시에서 더 확실히 읽을 수 있다. 아베노믹스 시작 전 1만선을 밑돌던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올 들어 15년 만에 2만선을 돌파했다.

일본 증시 상승 한가운데에 '만능통장'이라 불리는 '소액투자 비과세제도'(니사, NISA)가 자리하고 있다.

저축에서 투자로의 자산 이동을 위해 지난해 1월 일본 정부가 도입한 니사는 그동안 주식 시장에 관심 없던 개인들을 대거 증시로 불러들이면서 일본 증시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이 내년 도입 예정인 한국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상당 부분 이 일본 니사를 모델로 하고 있다.

◆ NISA 921만 계좌 돌파…저축에서 투자로 전환

니사는 영국의 개인저축계좌(ISA)를 본따서 만든 것으로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비과세 투자상품이다.

예·적금을 제외하고 상장주식과 공모펀드(해외포함) 등을 자유롭게 니사 계좌 안에 담을 수 있다. 연간 100만엔에 한해 최대 500만엔까지 투자할 수 있다. 배당, 양도차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일본 금융청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니사 계좌를 통해 들어온 자금(투자액)은 5조1936억엔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제도 도입 초기 1조34억엔과 비교하면 5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계좌 수는 지난해 650만3951계좌에서 올해 6월 921만2167계좌까지 증가했다.

니사 투자액의 31%는 상장 주식에 유입됐고, 나머지 60%는 펀드에 몰리면서 니사는 일본 증시 상승에 촉매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증권의 치다 사토시 증권기획부장은 "1600~1700조엔에 달하는 일본 개인 자산 중 50%가 예금에 들어있다"며 "이 돈을 증시로 끌어오기 위해 도입한 것이 니사이고 노무라에서도 이 점을 가장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921만 니사 계좌 가운데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230여만 계좌가 노무라증권을 통해 만들어졌다.

치다 부장은 "니사가 어떤 제도이고 가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투자자들도 많다"며 "이를 위해 다양한 홍보·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르포] 일본 증시 원동력 '니사'(NISA)를 찾아서…한국형ISA 과제는
실제 도쿄 주요 거리 곳곳과 지하철 역사에서는 니사 관련 홍보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치다 부장은 "니사 계좌에서 이번에 상장한 우정그룹 3개사 주식을 많이 샀다"며 "니사 제도 도입은 일본 개인들이 저축에서 투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노무라와 함께 니사를 주도하고 있는 다이와증권의 타쿠야 후지 투자신탁부 부장은 "니사 도입 초기에는 고령층이 기존 계좌를 이전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시간이 갈수록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면서 30~40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금융청은 오는 2020년까지 니사 투자액을 25조엔으로 늘리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현재 10년인 비과세 기간을 영구화하는걸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내년 1월부터 니사를 확대 개편한 주니어(Junior) 니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젊은 세대의 투자 저변을 넓히고, 고령층에 치중한 금융 자산을 성장자금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주니어 니사는 20세 미만을 가입 대상으로 하되 조부모, 부모 등이 자녀 명의로 투자하는게 특징이다. 예컨대 조부모나 부모가 자녀, 손자의 장래를 위해 장기 투자 할 수 있도록 비과세 혜택을 주는 것이다. 단 18세 이전까지는 자금을 인출할 수 없다.

비과세 대상은 상장주식과 공모펀드 등으로 일반 니사와 같지만 연간 투자한도는 80만엔으로 좀더 적다.

일본 신탁협회 아츠히코 마츠무라 매니저는 "주니어 니사와 비슷한 제도로 교육자금증여신탁제도와 결혼·양육자금 일괄증여비과세 제도가 있다"며 "이 제도들을 통해 자산의 세대 간 이전이 발생하면서 젊은 층에 여유가 생겼고 이는 소비 촉진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신탁협회에 따르면 교육자금증여신탁 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조부모에서 손자에게 이전된 자산은 9639억엔이다. 이중 실제 교육자금으로 집행된 돈은 1205억엔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내년 시행할 주니어 니사를 통해 이같은 세대 간 자산 이전이 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 한국형ISA '반쪽짜리' 논란…"중도인출 가능해야"

한국도 저금리 시대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재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내년 1월 한국형 ISA를 시작한다.

일본 니사와 달리 근로 또는 사업소득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예·적금을 포함한 주식, 채권 등을 ISA 계좌 안에 담을 수 있다.

연간 투자한도는 2000만원, 발생 소득 200만원까지 비과세이고 초과분에 대해서는 9% 분리과세를 적용한다. 의무가입 유지기간은 5년이다.

당초 한국형 ISA를 두고 일부에서는 부자감세 논란이 대두됐다. 특히 가입 자격을 근로, 사업소득자로 제한하면서 실질적으로 이 제도를 필요로 하는 은퇴자, 주부, 농어민 등이 소외된 반쪽 짜리 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도입했던 재형저축(근로자재산형성저축)이나 소장펀드(소득공제장기펀드) 역시 가입자격을 총 급여 5000만원 이하로 한정한 탓에 흥행에 실패했다.

일본 금융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니사는 도입 시 부자감세에 대한 반대는 전혀 없었다"며 "모든 사람이 가입할 수 있고 한도 역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청 금융심의회의 오사키 사다카즈 위원(도쿄대 법학부 객원교수)은 오히려 한국형 ISA에서 부자감세 논란보다 더 중요한 점은 중도인출을 막아놓은 것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제도 자체가 이익에 대해 비과세하는 건데, 5년 동안 가지고 있다가 손실이 나면 문제가 생긴다"며 "개인이 융통성있게 운용할 수 있도록 중도인출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사키 위원은 "부유층은 손실이 나더라도 당장 인출 욕구가 크지 않지만, 저소득층은 다르다"며 "손익합산을 해주던지, 중도인출을 가능하게 하던지 둘 중 하나는 만들어줘야 한국형 ISA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역시도 니사 확산을 위해 니사와 다른 금융상품의 투자 손익을 합산해 세금을 매기는 '금융소득일원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도쿄(일본)= 권민경 한경닷컴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