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9일 오후 9시

[마켓인사이트] 신원정 삼성증권 IB본부장 "투자금융·대체투자 시장서 새 먹거리 만들겠다"
투자은행(IB)업계만큼 이직이 잦은 곳도 드물다. 주요 증권사 IB 수장들은 최소 서너 곳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업계에서 홀로 다른 길을 걸어온 인물이 있다. 신원정 삼성증권 IB본부장(사진)은 20년 넘게 ‘삼성맨’으로서 혁신적인 딜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토종 IB의 자존심을 지켜 왔다.

제조업에서 최첨단 금융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86학번)인 신 본부장은 대학 졸업 후 1990년 삼성전자 재무팀으로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말대로 “IB라는 말이 해외에서 온 첨단 금융기법쯤으로 인식될 만큼 생소하던 때”였다.

신 본부장이 생소한 IB 분야에 발을 들인 건 우연한 계기였다. 1992년 삼성그룹이 국제증권(현 삼성증권)을 인수하면서 그에게 자리를 옮기라는 지시가 갑작스레 떨어진 것. 삼성전자가 첫 휴대폰 생산에 들어가고 반도체사업이 폭발적인 성장기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국제증권은 전국 지점 7곳에 직원이 200명에 불과한 소형 증권사였다. 하지만 신 본부장은 삼성전자를 떠나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당시만 해도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유동화 거래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대신 회사채시장이 태동하고 있었다. 문패를 바꿔 단 삼성증권은 빠르게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신 본부장은 IB업계에서 ‘기념비적인 딜’로 꼽히는 삼성전자의 1993년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발행과 1997년 은행권 최초인 한미은행의 해외 전환사채(CB) 발행에 참여했다. 그는 “이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의 회사채와 전환사채를 해외에 파는 시장의 25%가량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했다. “1997년 영국 로드쇼를 위해 런던에 도착해보니 시장에 기아자동차 부도설이 돌았어요. 90%가 넘는 CB 청약주문이 갑작스레 취소되더군요. 그게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였습니다.”

한국 IB를 빛낸 ‘창의적 딜’

위기는 강력했다. KT 포스코 KT&G 국민은행 등 이른바 ‘국민 기업’으로 꼽히던 회사들이 잇따라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신 본부장도 그해 M&A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 기업을 사려는 외국인들의 투자를 유치하고 컨설팅하는 업무가 밀려들었다. 신 본부장은 이후 2000년부터 6년 동안 삼성증권 런던 현지법인에서 주식자본시장(ECM) 분야를 총괄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각종 딜 경험과 해외 현지 근무 덕분에 국제 감각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나라는 불행한 일을 당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그런 경험 덕분이었을까. 한국으로 돌아온 신 본부장은 업계에서 전례가 없던 딜을 다수 성공 시켰다. 국내 최초의 ‘차입 매수(LBO)’로 평가받는 2005년 크라운제과의 해태제과 인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8년 윤윤수 회장의 휠라코리아 인수도 국내 첫 ‘내부경영자 매수(MBO)’였다. 지난해 업계를 떠들썩하게 한 카카오-다음 간 합병도 그의 작품이다.

“후배들 키우는 게 내 역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신 본부장은 “삼성증권은 채권자본시장(DCM) 분야에서는 삼성 계열사 물량을 맡을 수 없어 전체 시장의 30%가량을 포기해야 하는 근본적 약점이 있다”며 “사무라이본드, 딤섬본드 등 외화채권시장을 공략해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공개(IPO) 분야에서 최근 몇 년간 뚜렷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지만 주도권을 쥐기 위해 내년 농사를 열심히 짓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삼성증권은 IPO 주관을 맡은 넷마블, 옐로모바일, 엑스엘게임즈 등을 내년 상반기에 상장시킨다는 계획이다.

신 본부장이 새로운 먹거리로 보고 있는 분야는 투자금융이다. 이미 경쟁이 포화 상태인 전통적 딜보다 인수금융, 자산 유동화 거래 컨설팅이 더 실익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거액 자산가를 상대로 대체투자자산 상품을 파는 영업도 그가 보는 블루오션 중 하나다. 신 본부장은 “부동산, 구조화채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객이 만족할 만한 대체투자 포트폴리오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입사 25주년 때 회사 후배들이 ‘어떻게 그렇게 한 회사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느냐’고 묻길래 한참 생각하다가 ‘모두 주변 사람들 덕이었다’고 대답했어요. 인재들이 떠나지 않고 일하고 싶은 환경을 조성하는 게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봅니다.”

정소람/임도원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