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현대제철이 9일 오후 7시 인천 남동아시아드경기장에서 열린 2015 W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 이천 대교와의 홈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4-3으로 이겼다. (사진 = 현대제철 레드엔젤스)



한국 여자축구는 2015년 FIFA(국제축구연맹) 캐나다 여자월드컵을 통해 16강 진출이라는 감격의 새 역사를 썼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아기자기한 경기력에 흠뻑 빠진 팬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그보다 더 큰 감동의 여자축구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이틀 전 열린 K리그 클래식 슈퍼 매치의 박진감 넘치는 맞대결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최인철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현대제철이 9일 오후 7시 인천 남동아시아드경기장에서 열린 2015 W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 이천 대교와의 홈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4-3으로 이겼다. 통산 4회 우승을 노리는 이천 대교를 물리치고 여자축구 통합 챔피언 3연패의 역사를 쓴 것이다.



1주일 전 이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 1차전에서도 득점 없이 비긴 양팀은 이번 두 번째 맞대결에서도 골이 좀처럼 터지지 않아 애태웠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양팀 골문을 지키고 있는 선수가 한국 여자축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베테랑 골키퍼들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캐나다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선방 실력을 인정받은 김정미(인천 현대제철)의 슈퍼 세이브가 계속해서 빛났다.



1차전 승부를 실점 없이 끝낸 1등 공신인 김정미는 매우 공격적으로 경기에 나선 이천 대교의 파상 공세를 온몸으로 버텨냈다.



28분에 이천 대교 미드필더 권은솜이 날린 오른발 발리슛 상황에서도 김정미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그 공을 정확하게 잡아냈다.



김정미는 49분에도 이천 대교 골잡이 이현영의 단독 기회를 상대하며 각도를 줄여 결정적인 슛을 잘 막아냈다.



반대쪽 골대를 지킨 이천 대교 골키퍼 전민경도 이에 질새라 놀라운 순발력을 자랑했다. 87분에 인천 현대제철 날개공격수 따이스가 결정적인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골문 왼쪽 구석을 노렸지만 전민경이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제대로 쳐냈다.



그녀들 덕분에 이 경기는 연장전까지 이어져야 했다. 아무리 방패가 강하다고 해도 축구장의 창은 언젠가 그 날카로움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연장전 8분에 이천 대교의 선취골이 홈팀 골문을 흔들었다. 교체 선수 김아름이 넘겨준 공을 받은 김상은이 오른발 슛을 강하게 차 넣은 것이다.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상대 골키퍼 김정미의 연이은 슈퍼 세이브에 막혀 분루를 삼켰던 김상은이 드디어 높아만 보였던 김정미의 벽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경기는 이대로 끝나는 듯 보였다. 벤치에서 기다리던 이천 대교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주심의 종료 휘슬만 기다렸다. 그런데 연장전 후반전 추가 시간 2분도 거의 다 끝날 시점에 대반전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인천 현대제철의 마지막 공격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브라질에서 데려온 골잡이 비야가 유연한 드리블 실력을 자랑하다가 결정적인 패스를 주장 이세은에게 이어줬을 때 이천 대교 미드필더 김아름이 노골적인 밀기 반칙을 저지른 것이다. 오현정 주심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길게 휘슬을 불어 페널티킥을 알렸다. 추가 시간이 거의 다 끝날 무렵이었기 때문에 이미 경기장에는 희비가 엇갈렸다. 이천 대교로서는 다 잡은 우승 트로피를 눈앞에서 놓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 절호의 기회를 골잡이 비야가 놓칠 리 없었다. 그녀의 왼발 페널티킥은 전민경을 속이고 오른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갔다.



인천 현대제철의 기적의 동점골 덕분에 승부차기까지 감상해야 했다. 한국 여자축구의 수준이 이렇게 높아졌다는 것을 많은 축구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가혹한 승부차기에서 먼저 실축한 쪽은 이천 대교였다. 후반전 교체 선수로 들어온 쁘레치냐가 오른발로 찬 공이 왼쪽 기둥에 맞은 것이다. 불혹의 그녀가 이천 대교 팬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빗나가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인천 현대제철에서도 미드필더 김나래의 오른발 인사이드 킥이 빗나가는 바람에 마지막 다섯 번째 키커에게 운명의 주사위가 주어졌다. 그런데 양 팀 감독은 이 중책을 모두 골키퍼에게 맡겼다. 세계 축구사에 보기 드문 마지막 명장면이 비로소 시작된 셈이었다.



먼저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이천 대교 골키퍼 전민경은 오른발 인사이드킥을 낮게 찼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녀의 발끝을 떠난 공은 골문 왼쪽 기둥을 벗어나고 말았다. 끼고 있던 골키퍼 장갑으로 얼굴을 감싸고 괴로워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골 라인을 지켜야 하는 운명을 떠안아야 했다.



인천 현대제철의 마지막 키커도 골키퍼 김정미였다. 뒤로 많이 물러서지 않고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시도한 김정미의 슛은 정확하게 왼쪽 구석으로 날아들었다. 전민경보다 정확하게 3개월 먼저 태어난 김정미는 담담하게 오른팔을 들고 승리를 확인했다. 정규리그에 이어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통합 챔피언 3연패의 위업을 드디어 우리는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여자 국가대표 골문을 지키며 만난 두 선수가 이렇게 기구한 운명 앞에 마주설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곡절 끝에 승자와 패자로 운명이 갈라졌지만 고락을 함께했던 두 선수의 승부차기 키커로서의 맞대결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가슴 찡한 마지막 장면이었다.



※ 2015 W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 결과(9일 오후 7시, 인천 남동아시아드 경기장)



★ 인천 현대제철 1-1 이천 대교 [득점 : 비야(연장30+3분,PK) / 김상은(연장8분,도움-김아름)]



- 1, 2차전 합산 결과 1-1 무승부, 승부차기 4-3으로 인천 현대제철 우승[통합 3연패 달성]



◎ 인천 현대제철 선수들



FW : 비야



AMF : 정설빈(72분↔전가을), 이민아(53분↔유영아), 따이스(연장17분↔신지혜)



DMF : 이세은, 조소현(53분↔김나래)



DF : 김두리, 김도연, 임선주, 김혜리



GK : 김정미



◎ 이천 대교 선수들



FW : 아현영(78분↔쁘레치냐)



AMF : 김상은, 김지영, 문미라



DMF : 권은솜, 김희영(65분↔김아름)



DF : 이은미, 박은선, 이은지(86분↔김혜영), 서현숙(46분↔이세진)



GK : 전민경
심재철기자 winsoc@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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