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5만원 고액권은 어디로 사라졌나
5만원짜리 고액권 회수율이 크게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일반인과 기업을 상대로 설문조사에 나설 모양이다. 탈세 목적으로 숨긴 것이라면 솔직한 답변은 기대 난망이다. 5만원은 1만원짜리 다섯 장 가치다. 우리 돈으로 60만원이 넘는 500유로에 비하면 잔돈이다. ‘빈 라덴’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500유로는 꼭꼭 숨어 있지만 5만원짜리는 사방에서 눈에 띈다.

우리 돈은 한국조폐공사가 만들어 한은에 보낸다. 한은은 이자를 받고 시중은행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공급하면서 재무상태표에 대여금 자산과 화폐발행 부채로 계상한다. 화폐발행 부채는 이자부담이 없지만 대여금에는 이자가 붙는다. 무자본 특수법인인 한은이 경비로 충당하고도 잉여금을 남기는 것은 발권력 때문이다. 화폐를 지니면 본의 아니게 한은에 이자수입을 안겨주는 것이다.

5만원짜리 회수율은 1만원짜리를 대체하는 효과 때문에 낮아진다. 1만원짜리 회수율은 100% 이상이다. 불분명한 회수율보다는 화폐발행액 자체를 살펴야 한다. 5만원짜리가 처음 발행된 2009년 말 화폐발행액은 37조3000억원이었다. 2010년은 43조3000억원, 2011년 48조7000억원, 2012년 54조3000억원으로 매년 5조원 정도의 증가세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말에는 63조4000억원으로 9조1000억원이나 증가했고 2014년 말에는 74조9000억원으로 11조5000억원의 폭증세를 보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 증가세가 두 배 이상 뛴 이유는 뭘까. 금융회사가 이자수입을 포기하고 현금 보유액을 늘릴 이유는 없고 기업도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 대신 도난 위험을 감수하면서 현금을 보관할 리 없다. 결국 가계의 현금 보유 증가가 원인일 것이다.

한은 국정감사에서 야당 국회의원은 부진한 지하경제 양성화 때문이라는 뉘앙스로 질책했다. 탈세로 떼돈을 번 부자가 고액권을 금고에 쌓아둔다는 주장은 서민을 흥분시키기에 딱 좋은 ‘프로파간다’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세금 없이 떼돈 벌 기회가 남아 있을까. 국세청 전산망은 거미줄처럼 촘촘하다. 금년에도 국세청은 개인사업자 53만명에게 탈루경고장을 발부했다. 병원, 유흥업소, 음식점, 예식장, 부동산 임대업자뿐만 아니라 변호사 등 전문직이 포함됐다. 그 결과 소득세 징수실적은 당초 예상을 훨씬 초과했다.

상속세 회피 목적으로 예금을 찾아 현금으로 감춰도 소용없다.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국세청은 인출된 예금의 사용처를 일일이 추적한다. 숨긴 것이 적발되면 고율의 가산세가 추가된다. 숨긴 돈은 나중에 쓰기도 쉽지 않다. 고액 거래나 소액이라도 입출금이 빈번하면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국세청에 통보한다. 숨긴 돈을 자산 취득이나 해외여행 경비에 지출하면 금방 붙잡힌다.

예금해봤자 금리가 너무 낮아 현금을 그냥 보관하는 경향도 늘었다. 그래도 최근 2년 동안 두 배의 현금 보유 증가세는 비정상적이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산정에 이자소득 등 금융자산 보유액이 반영된다.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과정에서도 금융재산은 조회된다. 예금을 찾아 현금으로 보관할 유인이 생긴 것이다.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도 변수다. 국가장학금은 5년 전에 비해 여섯 배나 증가했다. 학업성적은 상관없고 소득분위에 따라 장학금이 정해진다. 장학금을 신청하려면 가구원의 정보제공 동의가 필수다. 가구원의 예금 등 금융자산이 소득분위에 반영되기 때문에 예금을 찾아 현금으로 보관할 유인이 현저하다.

복지예산 및 국가장학금 확대와 화폐발행고의 연관성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일정 금액 이내 예금은 소득분위 산정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서울시가 내놓은 청년수당 월 50만원은 단 몇 원의 소득 때문에 수혜 여부가 갈릴 것이다. 성적장학금 폐지 계획을 밝힌 대학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걱정이다. 저소득층의 저축 의욕을 꺾을 가능성이 농후한 소득분위 산정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만우 < 교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