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열정 같은…' 수습기자 역 배우 박보영
연기지만 상사가 주는 압박감 느껴
"직장인들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해요"
옅은 화장을 한 박보영(25·사진)이 카메라 앞에서 수줍게 말한다. 흥행작 ‘과속스캔들’(2008년)에서 10대 미혼모 역으로 유명해진 그가 어느덧 데뷔 10년차를 맞아 소녀 티를 벗고 숙녀가 됐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코미디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감독 정기훈)에서는 실제 나이에 걸맞게 스포츠신문 연예부 수습기자 도라희 역으로 팬들을 찾아온다. ‘인간 탈곡기’라 불리는 부장(정재영 분) 밑에서 사회생활의 고충을 온몸으로 겪는 새내기 직장인 역이다. 13일 서울 팔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 연기에는 70점을 주고 싶습니다. 첫 시사에서는 못한 것만 크게 보였어요. 저는 늘 처음 보고 나면 우울해져요. 두 번째 보니까 전체적으로 눈에 들어왔어요. 일반인들이 어떻게 볼까 궁금합니다. 시사회에서 관객들이 많이 웃었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거든요.”
영화에서 박보영은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꾸지만 입사와 동시에 그 꿈이 무너진다. 상사가 매일 꾸지람을 폭탄처럼 퍼붓는다. 하지만 정신을 잃지 않고(?) 또박또박 대꾸하는 그녀의 모습은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든다. 박보영은 이번 연기를 하면서 데뷔 초 현장에서 자주 혼나던 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진짜 많이 혼났죠. 사실 혼나지 않은 지 얼마 안 됐어요. 지금도 혼나고는 있지만 예전에 비해 횟수와 강도가 줄었죠. 전에는 강도와 빈도가 크고 잦았거든요. 직장인들은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는 혼나면서 속으로 ‘나는 정말 잘 될 거야’라고 되뇌었는데, 극중 라희는 ‘진급해서 그런 말 안 들을 테야’라고 다짐할 뿐이죠.”
그는 라희 역을 통해 연예부 기자의 고충도 어느 정도 알게 됐다고 했다. 촬영장에서 신문사 연예부 막내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부장이 막 소리 지르는 장면을 떠올렸다.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견디기 어려웠어요. 데스크(부장)가 주는 압박이 컸어요. 데스크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왠지 제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직장인들은 어떻게 매일 견뎌요? 저는 그런 생활을 못할 것 같아요.”
그는 라희 역을 연기하는 동안 정재영, 오달수(국장 역) 등과 호흡을 잘 맞추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두 선배는 힘 빼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생활 연기의 달인들이어서다. 오달수한테는 그 비결을 살짝 물어봤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해보지 않은 역할을 최대한 많이 해보려고 했어요.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경험을 쌓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러브 스토리에는 손이 잘 안 갔어요. 멜로 연기를 잘할 수 있을지 제 자신한테 의문이 가거든요.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사랑하는 것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애절하고 깊은 사랑을 아직 못해봐서요.”
박보영은 “연기자로선 속도가 느려도 이것저것 건드려 보면서 성장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배신(?)해 보려고 한다”며 “출연작마다 제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