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대박·쪽박의 함정'…시장경제 뿌리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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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희소성 법칙' 전제 흔들려
뉴 노멀 환경에 맞게 시장 재조정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뉴 노멀 환경에 맞게 시장 재조정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이를 채워줄 수 있는 자원은 유한하다.’ 경제원론 첫 페이지를 열면 처음 마주하는 ‘자원의 희소성 법칙’이다. 이 법칙을 어떻게 풀 것인가가 경제학의 알파(α)이자 오메가(Ω)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시장 신호에 의한 방법이다. 특정 재화에 욕망이 큰 시장 참가자는 높은 가격을 써낼 의향이 있고, 그 신호대로 해당 재화를 배분하면 된다. 가장 간단하고 이상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모든 경제주체가 시장경제에 매력을 느낀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간단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이상적이기 때문에 달성하기 힘들다. 완전경쟁은 아니더라도 시장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시장 참가자가 충분히 많아야 하고 제품의 질도 이질적이지 않아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성도 크게 차이가 나선 안 된다.
제품도 경합성과 배제성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경합성이란 특정 재화를 차지하기 위한 시장 참가자 간 경쟁을, 배제성이란 가격을 지급한 시장 참가자만 특정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전제와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시장에 맡기는 것이 더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시장의 실패’다.
정부가 나서는 것도 이때다. 시장 참가자, 제품의 질, 정보 대칭성이 잘 지켜지지 않는 독과점 시장이거나 △경합성과 배제성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공공 분야 △사적 비용(P)과 사회적 비용(S) 간 괴리를 발생시키는 ‘외부성’(P>S이면 ‘외부경제’, P
경제학을 조금만 접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최근 더 근본적인 곳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든 정부 개입이든 자원의 희소성 법칙을 해결하기 위한 주체인 인간은 ‘합리적’이어야 하고, 제품 ‘가치(value)’와 ‘가격(price)’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양대 전제다.
시장에서 인간의 합리성은 갖고자 하는 특정 재화의 제품 가치와 가격으로 나타난다. 가치에 합당한 가격, 즉 돈을 내면 ‘합리적’, 그렇지 못하면 ‘비합리적’으로 판단된다. 화폐의 3대 기능인 교환의 매개, 가치저장, 회계단위 중 가치저장 기능이 가장 중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후처럼 돈이 많이 풀리면 가치저장기능이 약해지면서 제품 가치와 가격 간 괴리가 발생한다. 이때는 특정 재화에 돈이 너무 많이 몰려 해당 재화의 가치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됨에 따라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인간의 전제가 시장에서 깨진 것으로 비쳐진다. 결과(pay-off)가 크게 차이 나는 빅 게임이론으로 보면 제품 가치에 비해 돈을 많이 번 기업가는 ‘대박’, 돈을 많이 지급한 소비자는 ‘쪽박’이 난 셈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특정 재화의 가치보다 가격이 너무 낮게 형성되는 때다.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 등의 발전으로 증강현실 시대가 가능해짐에 따라 자원의 공간적 한계가 넓어지고 있다. 경제주체가 공간적 뉴프런티어 개척에 나서면서 ‘자원이 유한하다’는 또 하나의 전제가 무너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상품 공간도 무너지고 있다. 세계화와 인터넷 등의 발달로 각국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만성적인 공급과잉 시대가 왔다. 이때도 가격파괴 경쟁이 격화하면서 제품 가치와의 괴리 현상이 발생한다. 빅 게임이론상 제품 가치보다 돈을 적게 번 기업가는 ‘쪽박’, 돈을 적게 낸 소비자는 ‘대박’이 난 셈이다.
자원의 희소성 법칙의 양대 전제가 무너진 여건에서는 제3의 방안이 동원돼야 한다. 금융위기 직후 각국 중앙은행은 돈을 많이 풀어 경제주체를 ‘화폐환상’에 빠지게 해 자원을 인위적으로 배분해왔다. 종전의 자원배분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 여건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돈을 많이 푼 것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우려했던 물가 상승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각국은 ‘D’ 공포를 우려하고 있다. 한시적으로 추진해야 할 비상대책인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 정책을 각국 중앙은행이 위기가 발생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제품은 갖고 있는 ‘가치’대로 ‘가격’을 받아야 기업인은 창조적 파괴정신이 고취되고 소비자는 공짜심리가 사라지면서 합리적인 소비행위가 정착할 수 있다. 법화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간적 뉴프런티어 시대에 맞게 시장조성 여건과 경제주체의 역할이 재조정돼야 ‘자원의 희소성 법칙’의 본질이 살아나면서 시장경제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시장 신호에 의한 방법이다. 특정 재화에 욕망이 큰 시장 참가자는 높은 가격을 써낼 의향이 있고, 그 신호대로 해당 재화를 배분하면 된다. 가장 간단하고 이상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모든 경제주체가 시장경제에 매력을 느낀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간단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이상적이기 때문에 달성하기 힘들다. 완전경쟁은 아니더라도 시장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시장 참가자가 충분히 많아야 하고 제품의 질도 이질적이지 않아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성도 크게 차이가 나선 안 된다.
제품도 경합성과 배제성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경합성이란 특정 재화를 차지하기 위한 시장 참가자 간 경쟁을, 배제성이란 가격을 지급한 시장 참가자만 특정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전제와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시장에 맡기는 것이 더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시장의 실패’다.
정부가 나서는 것도 이때다. 시장 참가자, 제품의 질, 정보 대칭성이 잘 지켜지지 않는 독과점 시장이거나 △경합성과 배제성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공공 분야 △사적 비용(P)과 사회적 비용(S) 간 괴리를 발생시키는 ‘외부성’(P>S이면 ‘외부경제’, P
경제학을 조금만 접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최근 더 근본적인 곳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든 정부 개입이든 자원의 희소성 법칙을 해결하기 위한 주체인 인간은 ‘합리적’이어야 하고, 제품 ‘가치(value)’와 ‘가격(price)’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양대 전제다.
시장에서 인간의 합리성은 갖고자 하는 특정 재화의 제품 가치와 가격으로 나타난다. 가치에 합당한 가격, 즉 돈을 내면 ‘합리적’, 그렇지 못하면 ‘비합리적’으로 판단된다. 화폐의 3대 기능인 교환의 매개, 가치저장, 회계단위 중 가치저장 기능이 가장 중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후처럼 돈이 많이 풀리면 가치저장기능이 약해지면서 제품 가치와 가격 간 괴리가 발생한다. 이때는 특정 재화에 돈이 너무 많이 몰려 해당 재화의 가치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됨에 따라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인간의 전제가 시장에서 깨진 것으로 비쳐진다. 결과(pay-off)가 크게 차이 나는 빅 게임이론으로 보면 제품 가치에 비해 돈을 많이 번 기업가는 ‘대박’, 돈을 많이 지급한 소비자는 ‘쪽박’이 난 셈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특정 재화의 가치보다 가격이 너무 낮게 형성되는 때다.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 등의 발전으로 증강현실 시대가 가능해짐에 따라 자원의 공간적 한계가 넓어지고 있다. 경제주체가 공간적 뉴프런티어 개척에 나서면서 ‘자원이 유한하다’는 또 하나의 전제가 무너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상품 공간도 무너지고 있다. 세계화와 인터넷 등의 발달로 각국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만성적인 공급과잉 시대가 왔다. 이때도 가격파괴 경쟁이 격화하면서 제품 가치와의 괴리 현상이 발생한다. 빅 게임이론상 제품 가치보다 돈을 적게 번 기업가는 ‘쪽박’, 돈을 적게 낸 소비자는 ‘대박’이 난 셈이다.
자원의 희소성 법칙의 양대 전제가 무너진 여건에서는 제3의 방안이 동원돼야 한다. 금융위기 직후 각국 중앙은행은 돈을 많이 풀어 경제주체를 ‘화폐환상’에 빠지게 해 자원을 인위적으로 배분해왔다. 종전의 자원배분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 여건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돈을 많이 푼 것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우려했던 물가 상승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각국은 ‘D’ 공포를 우려하고 있다. 한시적으로 추진해야 할 비상대책인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 정책을 각국 중앙은행이 위기가 발생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제품은 갖고 있는 ‘가치’대로 ‘가격’을 받아야 기업인은 창조적 파괴정신이 고취되고 소비자는 공짜심리가 사라지면서 합리적인 소비행위가 정착할 수 있다. 법화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간적 뉴프런티어 시대에 맞게 시장조성 여건과 경제주체의 역할이 재조정돼야 ‘자원의 희소성 법칙’의 본질이 살아나면서 시장경제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