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이불 - 박형준 (1966~)
아버지가 죽은 방에서
늙은 어머니가
가을 이불을 꾸민다

서리 내리는 계절
창호지에 드나드는
저녁 그늘 수놓인다

이제 집 마당에
서리는 부풀어
어느 어둠 속에 반짝이며
깔리는지

고향집늙은 어머니가 꾸미는
가을 이불 한 채 찬란하다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문학과지성사) 中

한 이불을 덮는다는 것은 아주 성스럽고 아름다운 일이지요. 이불에서 삶의 에피소드가 묻어 빛납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는 이불을 바꿔줍니다. 그 이불의 촉감으로 우리는 계절과의 만남을 생각해요. 햇살이 한 발 두 발 내딛는 가을, 저녁 서리가 짜는 그늘이 창호문에 어립니다. 그때 가을 이불 꾸리는 어머니의 손길은 정갈하게 바쁩니다. 서리가 누르는 추위를 견딜 만큼의 솜을 넣고, 어머니는 이불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게지요. 이불의 짜임을 보고, 우리는 삶의 무늬들을 탐구하려는 듯 말이지요.

이소연 시인(2014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