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이등병' 최용덕 전 차관이 공군 창설 밑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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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외교국방연구소 이사장 발표
"이순신 백의정신 살리자" 설득
"이순신 백의정신 살리자" 설득
예비역 공군 소장인 김동호 외교국방연구소 이사장은 19일 열린 ‘제2회 공군역사재단 학술회의’에서 ‘해방 이후 항공인들의 활동이 공군 창설에 미친 영향’을 발표한 뒤 이같이 말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해방 이후 귀국한 항공인 500여명은 1948년 3월 미국 군정청으로부터 조선경비대 내 ‘경항공비부대’ 창설 승인을 받아냈다.
다만 미 군정청은 당시 한국 항공분야의 지도급 인사들이 대부분 중국군과 일본군 출신인 만큼 보병학교에 병사 자격으로 입대, 1개월간 미국식 훈련을 받을 것을 요구했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 남창기지 사령관을 지낸 뒤 임시정부에서 광복군 비행대 창설을 주도한 고(故) 최용덕 전 국방차관은 반대하는 후배들에게 “항공부대가 창설만 된다면 병이면 어떠냐,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정신’을 잘 이해한다면 이등병으로 입대하는 것도 뜻이 있지 않으냐. 우리 군대에서 우리 영공을 지킬 수 있다면 이까짓 모욕이 뭐 그리 대수겠느냐”고 설득했다.
최고령 선임자로 당시 만 50세였던 최 전 차관의 결단에 따라 고 김정렬 초대 공군참모총장, 고 장덕창 4대 공군참모총장 등 7명은 1948년 4월 입대해 한 달간 병사 훈련을 받은 뒤 5월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하교)에 입교, 6기 생도들과 2주간 장교 후보생 교육을 받고 소위로 임관해 항공부대 간부로 활동했다.
최승욱 선임기자 s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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