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레미콘 공장으론 국내 최대 규모인 산하의 남양주 공장. 산하 제공
단일 레미콘 공장으론 국내 최대 규모인 산하의 남양주 공장. 산하 제공
2012년 초, 레미콘·아스콘업체인 ‘산하’의 박성택 회장(중소기업중앙회 회장·사진)이 임원들을 불러 모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도시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게 인근 신도시에서 공장까지 관을 연결하라”고 지시했다. 다른 공장은 벙커C유를 쓸 때였다. 임원들은 모두 “안 된다”고 반대했다. 공장까지 배관을 연결하려면 수십억원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길에 깔린 관은 회사의 자산으로 잡을 수도 없다고 했다. 임원들은 “안 써도 돈을 버는데 뭐하러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느냐”고 했다. 박 회장은 “몇 년이면 투자비를 회수하고, 환경에도 좋고 주민에게도 이익이면 해야 한다”며 투자를 강행했다.

◆통 큰 미래형 투자

"1,2년 사업하나" 최대 레미콘 공장 밀어붙인 박성택
최근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에 있는 산하 공장을 찾았다. 경영자 박성택 회장이 어떻게 연매출 500억원대 회사를 일궜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그의 경영스타일은 알려진 적이 없다.

공장 앞에 이르자 산을 깎아 지은 대규모 공장이 나타났다. 수십대의 트럭이 쉴 새 없이 레미콘과 아스콘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이 공장 크기는 6만6115㎡에 이른다. 단일 레미콘 공장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김인철 이사는 “1995년 처음 공장을 지을 때 회장의 지시로 땅을 많이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주변에서는 처음부터 너무 크게 시작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박 회장은 “1, 2년 사업할 것도 아닌데 앞을 보고 크게 지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예상대로였다. 현재 산하 사업장에는 골재, 모래, 아스콘, 레미콘 생산시설이 꽉 들어차 있다.

한 해 이익의 절반인 20억원 가까이 들인 도시가스 투자의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원가경쟁력이 높아졌다. 공장 주변의 주민도 그 덕분에 도시가스를 쓸 수 있게 돼 소음 등의 민원도 줄었다.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레미콘사업에서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간파한 투자였다.

업계 관계자는 “레미콘사업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분야에서도 혁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 회장은 “사업은 게임과 같다”며 “당장 손에 쥐고 있는 수십억원보다 미래에 들어올 더 큰 수확을 보고 베팅하는 게 기업인”이라고 설명했다.

생산설비에도 과감히 투자했다. 시멘트와 골재 물 등을 섞어 레미콘을 제조해주는 믹서는 ‘레미콘의 심장’으로 불린다. 박 회장은 공장 건설 초기 믹서를 일본에서 들여왔다. 가격은 국산의 두 배였다. 그러나 변질과 고장이 없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박 회장은 돌을 깨 레미콘 원료로 만드는 파쇄기, 인공모래를 만드는 시설 등을 공장에 넣어 일관생산라인을 갖춰 효율성을 높였다.

◆레미콘 기사도 해외연수

사람에 대한 투자도 과감하다. 김 이사는 “설립 초기 회장이 대학 졸업자를 뽑으라고 할 때는 좀 황당했다”고 말했다. 레미콘업계에 대학 졸업자가 거의 없던 때다. 박 회장은 “회사를 키우려면 인재를 뽑아야 한다”며 대학 졸업자를 뽑기 시작했다. 이렇게 뽑은 사람들은 회사를 잘 나가지 않는다. 이 회사의 평균 근속연수가 13년 정도 된다. 박 회장은 “사람을 한번 믿으면 완전히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라며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보람을 느껴 오래 다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산하에는 회장에게 보고할 때 “어떻게 할까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문화가 조성됐다. 이 질문을 하면 박 회장은 항상 “네가 결정하지 않으려면 넌 왜 그 자리에 있느냐”고 질책하기 때문이다. 산하 영업사원들이 제품 판매를 위해 협상할 때 가격결정권을 갖는 배경이다.

결정이 잘못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김 이사는 “누가 실수를 하면 회장은 ‘수업료라고 생각하라’고 한다. 다만 같은 실수가 반복되면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외 연수와 여행도 적극적으로 보내주고 있다. 레미콘이 내수산업이지만 이종세 공장장은 지금까지 일본을 다섯 번 다녀왔다. 생산직 직원 상당수도 일본 아스콘 레미콘업계를 돌아봤다. 2008년 일본 연수 때는 레미콘 기사들도 함께 갔다. 같은 회사 직원은 아니지만 함께 일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몇 해 전에는 직원 35명 전원에게 3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미국 서부를 여행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남양주=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