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백병전에서 공성전으로…차벽, 시위 부상자 확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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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 13년…명과 암은
미군장갑차 사건 추모집회 때 등장
"행동자유권 침해" 논란 크지만 불법·폭력 시위 억제 효과
2005년 경찰 부상자 893명서 지난해 78명으로 급감
"캐나다는 자전거, 독일은 철책…해외도 저마다 통제수단 있어"
미군장갑차 사건 추모집회 때 등장
"행동자유권 침해" 논란 크지만 불법·폭력 시위 억제 효과
2005년 경찰 부상자 893명서 지난해 78명으로 급감
"캐나다는 자전거, 독일은 철책…해외도 저마다 통제수단 있어"
지난 14일 대규모 시위를 계기로 경찰 버스를 빈틈없이 이어붙여 만드는 ‘차벽(車壁)’이 화두로 떠올랐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지만 차벽의 역사는 13년이 됐다. 시위 때마다 차벽을 사이에 두고 시위대와 경찰이 공방전을 벌이다 보니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단어다.
차벽이 시위 대응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집회 양상도 많이 달라졌다. 화염병과 돌, 쇠파이프와 방패가 충돌하던 시위가 차벽을 무너뜨리느냐 지키느냐의 공성전(攻城戰)으로 바뀐 것이다.
대형 집회·시위가 쓴 ‘차벽 13년사’
진보진영에서 보수정권의 상징처럼 비판하는 차벽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12월 주한미군 장갑차 사건 추모 집회 때 처음 등장했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집회에는 10만여명이 참가했다. 이 중 일부가 경찰 저지선을 뚫고 집회·시위 금지구역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앞까지 진출하자 경찰 인력만으로 방어에 한계를 느낀 경찰이 차벽을 쳤다.
차벽을 통한 시위 대응은 노무현 정부에서 완전히 정착됐다. 2003년 광화문에서 열린 반미연대집회가 대표적이다. 이를 시작으로 2004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집회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농산물시장 개방 반대집회, 2006년 한·미 FTA 협상 반대집회 등에서도 차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는 인권과 안전을 강조한 시대상이 반영됐다. 경찰 관계자는 “시민 안전을 강조하다 보니 시위대에서 부상자가 나오면 정부가 부담을 크게 느꼈고 그만큼 경찰력이 무력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시위대 저지 수단으로 차벽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차벽은 이후 정부에서도 계속 등장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집회·시위로 꼽히는 2008년 6월 광우병 촛불집회,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의 추모식, 올해 4월 세월호 1주기를 맞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 등이 주요 사례다.
차벽을 사이에 둔 시위대와 경찰의 대응전략도 변하고 있다. 초기에는 차벽을 미는 데 그쳤던 시위대는 최근 경찰 버스 바퀴에 밧줄을 걸어 끌어내는 방식으로 차벽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위 부상자 줄이는 데는 효과
경찰청 관계자는 “차벽은 시위대와의 신체 접촉을 피하면서 넓은 면적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며 “집회·시위 현장에서 차벽을 적극 사용한 뒤부터 경찰 부상자 수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2005년 893명에 달하던 경찰 부상자는 2010년 이후 대체로 100명 이하를 유지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는 시위대가 돌과 화염병을 동원할 때 경찰은 최루탄으로 맞섰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들어 경찰이 ‘무(無) 최루탄 선언’을 했지만 오히려 양측의 부상자는 더 늘었다. 각목과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시위대와 방패를 든 경찰이 충돌하면서 ‘백병전(白兵戰)’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은 평화시위를 유도한다며 최전선에 여성 경찰을 배치하는 ‘립스틱 라인’을 도입하기도 했지만 경찰관 성희롱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차벽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높은 차량으로 시위대를 막아서는 건 방패에 가로막히는 것보다 위압감이 더 크다”며 “집회에 참가하지 않는 이들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선 경찰들은 차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울의 한 경찰서 경비과장은 “차벽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차벽 없이 폴리스라인으로만 다중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교황 방문 행사 등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신종묵 경찰청 경비2계장은 “영국은 말, 미국은 개, 캐나다는 자전거, 독일은 철책 등 시위대에 대한 통제수단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차벽이 이에 해당한다”며 “해외에서는 이런 집회통제 수단에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완전히 둘러싼 조치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모든 집회를 사전에 전면 금지하고 일반 시민 통행까지 막은 건 행동자유권 침해”라고 했다. 이를 근거로 제기되는 ‘차벽 위헌론’에 경찰은 “헌재 결정의 취지는 과도한 차벽 설치가 위헌이라는 것이지 차벽 자체가 위헌이라는 말은 아니다”며 맞서고 있다.
마지혜/윤희은 기자 looky@hankyung.com
차벽이 시위 대응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집회 양상도 많이 달라졌다. 화염병과 돌, 쇠파이프와 방패가 충돌하던 시위가 차벽을 무너뜨리느냐 지키느냐의 공성전(攻城戰)으로 바뀐 것이다.
대형 집회·시위가 쓴 ‘차벽 13년사’
진보진영에서 보수정권의 상징처럼 비판하는 차벽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12월 주한미군 장갑차 사건 추모 집회 때 처음 등장했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집회에는 10만여명이 참가했다. 이 중 일부가 경찰 저지선을 뚫고 집회·시위 금지구역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앞까지 진출하자 경찰 인력만으로 방어에 한계를 느낀 경찰이 차벽을 쳤다.
차벽을 통한 시위 대응은 노무현 정부에서 완전히 정착됐다. 2003년 광화문에서 열린 반미연대집회가 대표적이다. 이를 시작으로 2004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집회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농산물시장 개방 반대집회, 2006년 한·미 FTA 협상 반대집회 등에서도 차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는 인권과 안전을 강조한 시대상이 반영됐다. 경찰 관계자는 “시민 안전을 강조하다 보니 시위대에서 부상자가 나오면 정부가 부담을 크게 느꼈고 그만큼 경찰력이 무력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시위대 저지 수단으로 차벽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차벽은 이후 정부에서도 계속 등장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집회·시위로 꼽히는 2008년 6월 광우병 촛불집회,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의 추모식, 올해 4월 세월호 1주기를 맞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 등이 주요 사례다.
차벽을 사이에 둔 시위대와 경찰의 대응전략도 변하고 있다. 초기에는 차벽을 미는 데 그쳤던 시위대는 최근 경찰 버스 바퀴에 밧줄을 걸어 끌어내는 방식으로 차벽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위 부상자 줄이는 데는 효과
경찰청 관계자는 “차벽은 시위대와의 신체 접촉을 피하면서 넓은 면적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며 “집회·시위 현장에서 차벽을 적극 사용한 뒤부터 경찰 부상자 수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2005년 893명에 달하던 경찰 부상자는 2010년 이후 대체로 100명 이하를 유지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는 시위대가 돌과 화염병을 동원할 때 경찰은 최루탄으로 맞섰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들어 경찰이 ‘무(無) 최루탄 선언’을 했지만 오히려 양측의 부상자는 더 늘었다. 각목과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시위대와 방패를 든 경찰이 충돌하면서 ‘백병전(白兵戰)’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은 평화시위를 유도한다며 최전선에 여성 경찰을 배치하는 ‘립스틱 라인’을 도입하기도 했지만 경찰관 성희롱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차벽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높은 차량으로 시위대를 막아서는 건 방패에 가로막히는 것보다 위압감이 더 크다”며 “집회에 참가하지 않는 이들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선 경찰들은 차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울의 한 경찰서 경비과장은 “차벽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차벽 없이 폴리스라인으로만 다중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교황 방문 행사 등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신종묵 경찰청 경비2계장은 “영국은 말, 미국은 개, 캐나다는 자전거, 독일은 철책 등 시위대에 대한 통제수단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차벽이 이에 해당한다”며 “해외에서는 이런 집회통제 수단에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완전히 둘러싼 조치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모든 집회를 사전에 전면 금지하고 일반 시민 통행까지 막은 건 행동자유권 침해”라고 했다. 이를 근거로 제기되는 ‘차벽 위헌론’에 경찰은 “헌재 결정의 취지는 과도한 차벽 설치가 위헌이라는 것이지 차벽 자체가 위헌이라는 말은 아니다”며 맞서고 있다.
마지혜/윤희은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