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과 쇼핑의 도시 홍콩은 이번 주말 ‘미술품 경매장’으로 변신한다. 한국의 경매회사 K옥션은 오는 28일 홍콩 르네상스하버뷰호텔, 홍콩크리스티는 28~29일 홍콩컨벤션센터에서 각각 경매를 연다. 서울옥션은 29일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경매를 진행한다. 이들 세 회사가 내놓은 작품은 총 814점. 추정가 총액이 1200억원에 이른다. 아시아 미술계의 ‘큰손’들이 이들 행사에서 베팅하는 돈은 1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K옥션이 오늘 28일 여는 홍콩 경매에 추정가 18억~40억원으로 출품한 김환기의 ‘귀로’.
K옥션이 오늘 28일 여는 홍콩 경매에 추정가 18억~40억원으로 출품한 김환기의 ‘귀로’.
◆김환기의 ‘귀로’ 18억~40억원

경매회사는 컬렉터들이 흥분할 만한 국내외 유명화가의 작품을 대거 출품했다. K옥션은 한국 근·현대 미술품과 해외 거장들의 작품 63점(106억원)을 경매에 부친다. 전략상품은 추정가 18억~40억원에 내놓은 김환기(1913~1974)의 ‘귀로’다. 김 화백이 1950년대 여인과 항아리를 소재로 그린 수작이다. 세련된 구성미와 밝은 색조의 격조 높은 조형성이 돋보인다.

홍콩 미술시장 단골 메뉴인 단색화가의 작품도 25점이나 포진했다. 정상화의 1979년작 ‘무제 79-3-20’(추정가 3억5000만~7억원)과 2012년작 ‘무제 12-3-5’(3억5000만원~6억원), 박서보의 ‘묘법 920220’(1억~4억원), 윤영근의 150호 크기 작품(1억~2억원) 등 몇 억원대 작품이 줄줄이 새 주인을 기다린다.

서울옥션이 출품한 ‘백자대호’
서울옥션이 출품한 ‘백자대호’
서울옥션은 고미술과 근·현대미술 119점, 약 250억원어치를 경매한다. 홍콩에서 단일 경매 추정액이 200억원을 넘기는 처음이다. 서울옥션은 고가의 도자기, 고서화 등 62점(약 50억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중 55점은 일본인 수집가가 50여년 동안 모아온 문화재들이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높이 42㎝의 달항아리 ‘백자대호’(18억원)는 국내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에 도전한다. 해외 작품으로는 야요이 구사마의 1960년작 ‘No.Red.A.B.C’(37억~52억원)가 눈길을 끈다.

홍콩크리스티는 ‘아시아 근·현대미술품’ 경매에 김환기 박서보 윤형근 등 한국작가 작품 35점을 포함해 모두 632점(추정가 841억원)을 이틀 동안 경매한다. 첫날인 28일 경매에 초고가 출품작 73점 가운데 6점을 한국의 단색화로 채우고, 경매 순서를 1~6번으로 배치했다.

◆국내 작가들 최고가 기록 쏟아져

아시아 지역 컬렉터들의 한국 미술품 수집 열기에 그림값도 급등하고 있다.

김환기 화백의 1971년작 전면 점화 ‘19-Ⅶ-71 #209’(47억2100만원)가 홍콩 시장에서 한국 작가 작품 중 가장 비싼 그림으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이우환의 1977년작 ‘점’(24억원), 박수근의 ‘모란’(16억4519만원), 정상화의 ‘무제 05-3-25’(11억4200만원), 홍경택의 ‘연필Ⅱ’(9억6000만원), 박서보의 ‘묘법’(7억원), 백남준의 ‘라이트 형제’(7억원)도 홍콩에서 자신의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남관 이성자 김창열 전광영 노상균 강형구 김동유 김덕용 최영걸 최소영 등 일부 작가의 작품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림에 세금 거의 없는 홍콩

홍콩 미술품 시장은 뉴욕과 런던에 이어 제3의 국제 시장으로 급성장하면서 연간 매출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홍콩이 이처럼 미술품 장터로 주목받는 것은 미술품 거래에 따른 세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홍콩에서는 비거주자가 그림을 팔 때만 0.5%의 거래세를 물린다. 미국·유럽·화교권 ‘슈퍼리치’와 세계적인 화랑들에 홍콩이 인기가 높은 까닭이다. 국제 미술계는 성장성이 높은 홍콩 시장을 겨냥해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가고시안·리먼머핀(미국), 화이트 큐브·벤 브라운(영국), 페로탱갤러리(프랑스) 등 세계적인 화랑 10여곳이 홍콩에 지점을 냈다.

이상규 K옥션 대표는 “홍콩은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장소인 데다 미술품 판매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고, 예술 측면에서도 진정한 자유구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검열이 없다”며 “중국 금융계의 ‘큰손’ 류이첸, 영화계 거물 왕중쥔 화이브러더스 회장,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 왕제린 완다그룹 회장, 다이즈캉 정다그룹 회장, 인도네시아 부호 위더야오 등 아시아 슈퍼리치들이 앞다퉈 고가 미술품을 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