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나이 든 고막 - 마종기(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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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싱싱하고 팽팽한 장구나 북같이
소리가 오면 힘차게 나를 불러주던 고막이
이제는 곳곳에 늙은 주름살만 늘어
느슨하게 풀어진 채 소리를 잘 잡지 못한다.
나이 들어 윤기도 힘도 빠진 한 겹 살,
주위에서는 귀 검사를 해보라고 하지만
그런 것 안 해도 알지, 내가 의사 아닌가.
그보다는 늙은 고막이 오히려 고마운걸.
시끄러운 소리 일일이 듣지 않아도 되고
잔소리에 응답을 안 해도 되는 딴청,
언제부턴가 깊고 은은한 소리만 즐겨 듣는다.
멀리서 오는 깨끗한 울림만 골라서 간직한다.
내 끝이 잘 보이는 오늘 같은 날에는
언젠가 들어본 저 사려 깊은 음성이
유난히 크게 울리는 사랑스런 내 귀.
이제 싱싱한 귀가 아니군요. 주름살 늘어난 한 겹 살일 뿐이군요. 당신은 어떤 소리들과 함께 지내며 늙은 살의 울림이 되어가고 있을까요. 세상에서 듣고 싶지 않은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야 할 때면 늙은 고막이 고맙습니다. 소리를 잘 잡아내지 못하니까요. 새 울음소리, 종소리는 더 잘 골라 듣고 오래 간직할 수 있으니까요. ‘내 끝이 잘 보이는’ 이 아침에는 늙은 귀의 주파수를 맞추고 안테나를 세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당신의 깊은 목소리를 수신해야겠습니다.
김민율 < 시인 (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 >
소리가 오면 힘차게 나를 불러주던 고막이
이제는 곳곳에 늙은 주름살만 늘어
느슨하게 풀어진 채 소리를 잘 잡지 못한다.
나이 들어 윤기도 힘도 빠진 한 겹 살,
주위에서는 귀 검사를 해보라고 하지만
그런 것 안 해도 알지, 내가 의사 아닌가.
그보다는 늙은 고막이 오히려 고마운걸.
시끄러운 소리 일일이 듣지 않아도 되고
잔소리에 응답을 안 해도 되는 딴청,
언제부턴가 깊고 은은한 소리만 즐겨 듣는다.
멀리서 오는 깨끗한 울림만 골라서 간직한다.
내 끝이 잘 보이는 오늘 같은 날에는
언젠가 들어본 저 사려 깊은 음성이
유난히 크게 울리는 사랑스런 내 귀.
이제 싱싱한 귀가 아니군요. 주름살 늘어난 한 겹 살일 뿐이군요. 당신은 어떤 소리들과 함께 지내며 늙은 살의 울림이 되어가고 있을까요. 세상에서 듣고 싶지 않은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야 할 때면 늙은 고막이 고맙습니다. 소리를 잘 잡아내지 못하니까요. 새 울음소리, 종소리는 더 잘 골라 듣고 오래 간직할 수 있으니까요. ‘내 끝이 잘 보이는’ 이 아침에는 늙은 귀의 주파수를 맞추고 안테나를 세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당신의 깊은 목소리를 수신해야겠습니다.
김민율 < 시인 (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