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팔순에 도전한 크고 힘든 작품…인권 말살 현실 고발"
“아서 밀러의 대표작 ‘시련’은 제가 말년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에는 밀러가 매카시즘 광풍을 겪었던 1950년대란 시대적 배경과 정치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어요. 이 시대에 줄 수 있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있는 작품입니다.”

올해 팔순인 배우 이순재 씨(사진)가 다음달 2일부터 28일까지 국립극단이 제작해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시련’에 출연한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극작가 밀러는 매카시즘 광풍에 사로잡힌 1950년대 미국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을 소재로 한다.

이씨는 지난해 서울관악극회가 제작한 연극 ‘시련’을 연출했을 만큼 이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이번 공연 제작도 올초 그가 먼저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에게 “이 작품을 제대로 제작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해 이뤄졌다.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과 개인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집단적 광기가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파괴해나가는지를 생생히 묘사한 수작입니다. 300여년 전의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모습이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씨는 고위직 행정관이자 법률가로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마녀’로 고발된 이들에게 무자비한 사형을 선고하는 댄포스를 연기한다. 그는 “댄포스는 대사도 많고, 쉴 새 없이 (상대역과) 붙고 격렬히 (연기)해야 하는 힘든 역”이라며 “그래도 의미 있는 공연이라고 생각해 다른 배우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 속 평범한 농부인 존 프락터는 마을 사람들의 마녀 재판에 휩싸이면서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거짓을 고백하고 생명을 유지하느냐,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느냐 고민합니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죠. 결국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희생이 전제된다는 것이 극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단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기획 주제로 내세운 ‘해방과 구속’의 마지막 무대다. 박정희 극단 풍경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이씨는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며 “제대로 연습해서 제대로 된 공연을 하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