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혜 씨의 ‘파라다이스’
문지혜 씨의 ‘파라다이스’
미술 재료들은 점차 진화한다. 돌가루, 종이죽, 콩, 쌀, 못, 알약, 큐빅, 혈액 등도 이미 작품의 재료가 된 지 오래다. 쓰레기도 작품 소재로 활용된다. 현대미술에는 재료의 한계가 없다는 얘기다. 신진화가 문지혜 씨(30)는 메모지나 종이를 고정하기 위해 쓰이는 가늘고 긴 핀을 작품 재료로 활용해 주목 받고 있다.

세종대 미대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문씨는 물감으로 칠한 그림 이미지에 수백 개의 핀을 꼽아 작품을 만들어낸다. 핀을 활용한 그의 작품은 평면회화도, 조각도 아닌 부조 형식의 또 다른 장르로 확장됐다. 작품의 참신성 때문에 홍콩 컨템퍼러리 아트페어, 싱가포르 어포더블 아트페어, 뱅크아트페어 등에서 인기를 끌며 해외에서 먼저 호평을 받았다.

문씨가 다음달 6일까지 서울 압구정동 청작화랑에서 핀을 활용한 작품을 모아 개인전을 연다. 전시 주제는 ‘행복한 삶’. 명품 구두, 신발, 가방, 할리우드, 도시 풍경 등 현대인의 소비 욕망을 상징하는 다양한 이미지에 특수 코팅한 핀을 꽂아 입체감을 살려낸 신작 20여점을 내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소비가 새로운 사회적 위계질서를 만들면서 현대인의 욕망을 지속적으로 창출해낸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문씨는 “본래의 용도와 상관없이 고가의 명품백과 신발로 자신을 과시하는 현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며 “소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개인적인 욕구를 그림에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뾰족한 핀을 작업에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비를 부추기고, 제어하려는 사회·정치적 의도를 ‘핀’이라는 오브제로 은유했다”고 얘기했다.

그는 “핀 작업으로 인한 손의 고통과 시간 투자 또한 작업의 일부”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작업의 방식조차 현대사회의 편리함에 이끌린다면 스스로 작업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관람객들이 도대체 뭐야 하겠지만, 바로 그게 작품들이 던지는 메시지죠.” (02)549-31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