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실태 파악을 하고 있는데 조사권이 없어 보도된 것 이상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부디 한국경제신문에서 잘 취재해 참고할 수 있도록 부탁합니다.”

26일 한국은행 관계자는 금융사기 실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법규 미비로 금융감독당국 및 수사기관 실무자들은 이처럼 사기 행위를 뻔히 보면서도 발만 구르고 있다.

우선 금융감독원과 한은 등은 금융사기를 파악할 능력은 있지만 금융사기업체에 손을 댈 수는 없다. 현행법은 금감원 등의 감독 대상을 제도권에 등록된 금융회사로 한정하고 있어서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등 대부분의 금융사기업체는 이를 피하기 위해 금융사로 등록하지 않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동원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 적용인데 이마저도 금감원에 감독 권한이 없어 처벌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단계 등 변칙 영업행위를 규제하는 공정거래위원회도 나서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에 근거해 공정위가 처벌에 나서려면 상품 등 실물이 거래돼야 하고, 물품 및 대금 거래가 세 단계 이상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금융사기는 투자금만 모집하므로 상품이 존재하지 않고, 개인과 사기업체 간 2단계 거래에 그친다.

결국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야 수사가 시작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대부분 형식상 법인이 해외에 있는 등 수사상 접근이 어려워 수사에 착수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수사에 나서더라도 사기업체가 고소인에게 원금을 돌려주고 고소를 취하시켜 수사가 중단되기도 한다. 지난 6월 중국 투자를 앞세운 금융사기업체인 차이나스타펀드를 검거한 경기 부천 원미경찰서는 수사 경찰관이 돈을 해당 업체에 맡기고 손실을 본 뒤에야 직접 고소해 본격 수사에 나설 수 있었다.

힘들게 사기범을 검거하더라도 적용할 법률이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지난달 가상화폐 사기업체인 퍼펙트코인을 수사한 서울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사기범들이 투자 대가로 현금이 아닌 포인트를 지급하다보니 다단계 사기 등 현행 법률을 적용하는 데 애를 먹었다”며 “금융사기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지만 관련자 처벌법이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금감원은 투자자들의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금감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금융회사로 등록하지 않고 원금 또는 그 이상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불법”이라고 했다.

오형주/박상용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