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연내 발효를 위한 비준동의안 처리시한(26일, 정부 설정)을 넘겼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27일 본회의를 열어서라도 비준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시장 개방에 따른 실질적인 피해 보전 대책이 필요하다며 맞서고 있다.

누리과정(영·유아 무상보육) 예산 문제, 복면금지법 등과 연계하는 정략적인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국가 통상정책이 정치논리에 밀려 표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거준비·정쟁으로 6개월 허비

정부가 한·중 FT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지난 6월5일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사회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시장 개방에 따른 산업별 피해 대책을 따져 올해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 하지만 정부가 비준안을 제출한 뒤 6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여야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비준안은 국회선진화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야당이 반대하면 처리가 불가능하다.

정기국회는 9월1일 문을 열었지만 정작 여야가 본격적으로 비준안 검토에 나선 것은 정기국회 100일 회기 중 3분의 2가 지난 이달 초부터였다. 내년 4월 총선의 공천 기준을 정하기 위한 각 당내 갈등이 불거진 데다 선거구재획정을 둘러싼 여야 의견이 엇갈리면서 국회가 처리해야 할 경제 이슈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이며 10월 한 달을 허비했다.

정부와 여당은 뒤늦게 전방위 압박을 펼치며 한·중 FTA 비준안 처리에 나섰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형환 기획재정부 차관은 26일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 “한·중 FTA가 올해 안에 발효되려면 27일 본회를 열고 비준안을 의결해야 한다”며 비준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했다. 새누리당도 이날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한·중 FTA 처리 전략을 논의했다.

새정치연합은 농·축·수산업계의 피해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버티고 있다. 27일 본회의 개최도 불투명하다. 야당은 본회의 개최의 전제조건으로 한·중 FTA와 상관없는 누리과정 예산 합의,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간 연장,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사업 감사, 복면금지법 반대 등을 내세우고 있다.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면 비준안 자체를 처리할 수 없게 된다.

국회 관계자는 “한·중 FTA 처리에 맞교환 요구조건을 내거는 야당의 구태도 문제지만 국회선진화법만 탓하며 정밀한 전략을 세우지 못한 여당도 너무 안이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이득 공유”vs“사례 전무”

여야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는 한·중 FTA 비준안의 핵심 쟁점은 크게 다섯 가지다. 야당이 요구하는 무역이득공유제와 관련, 정부와 여당은 “전례가 없다”며 수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시장 개방으로 타격을 입는 농작물의 가격을 보전해주는 피해보전직불제는 가격 보전 수준을 한발씩 양보하는 방식으로 여야가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농수산 정책자금 금리와 농업용 전기요금 인하에 대해선 정부가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새누리당·새정치연합 원내대표와 정책위원회 의장,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비준안과 주요 법안 처리 문제를 놓고 밤늦게까지 협상을 벌였다. 비준안 처리 문제에 대해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뤘으나 최종 합의는 하지 못해 27일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