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부터 구상화까지…홍콩 홀린 'K아트'
“박서보의 ‘묘법 No.2-80-81’입니다. 300만홍콩달러, 450만, 500만…. 전화 응찰자가 또 있군요. 580만, 620만. 더 응찰할 분 있습니까. 650만 나왔습니다. 낙찰입니다.”

29일 서울옥션 제17회 홍콩 경매가 열린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 살롱에서 박수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박서보의 작품이 홍콩에서 이틀 연속 판매가 10억원을 넘긴 순간이었다.

지난 28~29일 홍콩에서 잇달아 열린 미술품 경매에서 세계 컬렉터들은 한국 예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서울옥션은 경매에 근현대 작품 62점, 고미술품 57점을 출품했다. 단색화 인기는 여전했다. 김환기의 1970년작 전면 점화 ‘16-II-70 #147’은 1593만홍콩달러(약 23억7600만원)에, 정상화의 1982년작 ‘무제 82-5-21’은 시작가의 두 배가 넘는 470만홍콩달러(약 7억100만원)에 낙찰됐다.

고미술도 주목받았다. 일본인 수집가가 50년간 소유했던 ‘백자 대호’는 21억1200만원에 한 한국인에게 낙찰됐다. 달항아리로 불리는 ‘백자 대호’는 전 세계에 20~30여점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나전칠국당초문합’은 약 5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29일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서울옥션 제17회 홍콩 경매에서 경매사가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서울옥션 제17회 홍콩 경매에서 경매사가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날인 28일 홍콩 크리스티는 홍콩컨벤션센터 그랜드홀에서 열린 ‘아시아 20세기와 동시대 미술 경매’ 이브닝세일에서 1번부터 6번 출품작을 김환기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등의 단색화 작품으로 채웠다. 이브닝세일은 경매품 중 주요 작품을 따로 뽑아 선보이는 자리로 출품 번호가 앞일수록 주목도가 높다.

가장 먼저 거래된 작품은 김환기의 1958년작 ‘무제’. 90만홍콩달러(약 1억3420만원)에 시작해 추정가의 여섯 배가 넘는 580만홍콩달러(약 8억6410만원)에 팔렸다. 이날 박서보는 이우환과 정상화에 이어 한국 생존 작가 중 공개 경매 낙찰가 10억원을 넘긴 세 번째 작가가 됐다. 1975년작 ‘묘법 No.65-75’가 940만홍콩달러(약 13억9070만원)에 팔렸다.

여섯 점의 총 판매가는 약 41억원에 달했다. 배혜경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한국 단색화가 전략적으로 앞에 배치됐다”며 “한국 미술에 대한 세계적 ‘큰손’들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같은 날 홍콩 르네상스하버뷰호텔에서 열린 K옥션 경매에서 김환기의 구상화 ‘귀로’는 추정가 18억원에 나와 수수료 포함해 약 23억5470만원에 낙찰됐다. 정창섭의 ‘닥 No.84099’와 이승조의 ‘핵’은 추정가의 다섯 배가 넘는 약 6620만원, 약 1억1340만원에 각각 팔렸다.

양대 한국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 홍콩 매출은 올해 처음으로 국내 매출을 추월했다. 올해 3분기 동안 연 홍콩 경매 낙찰 총액은 약 608억2500만원, 이번 결과를 합치면 약 94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세계 컬렉터들의 한국 미술 수요가 꾸준하다”며 “단색화로 시작된 해외의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경매 프로그램을 통해 근대 작가군과 고미술 등으로 넓혀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콩=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