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영웅보다 아비로 살려는 날 욕하시오.”

지난 26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한 창극 ‘아비. 방연’(국립창극단 제작)은 조선시대 단종이 노산군으로 격하돼 강원 영월로 귀양 갈 때 호송한 금부도사 왕방연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아비 방연이 외동딸 소사를 살리기 위해 대의를 꺾는 심경을 절절하게 토해내자 객석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한아름 서재형 부부.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한아름 서재형 부부.
‘팩션 사극’인 이 작품은 마니아 관객을 몰고 다니는 극단 ‘죽도록 달린다’에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서재형(연출)·한아름(작가) 부부의 작품이다. 김연정 국립창극단 프로듀서는 “둘 사이에 23개월 된 딸이 있는데, 아이 때문에 작품이 더 애절하게 나온 것 같다”고 귀띔했다.

최근 공연계에서 제작, 연출, 연기 등을 넘나드는 부부의 공동 작업이 돋보이는 작품이 잇따르고 있다. 서로의 스타일을 잘 아는 부부가 함께 작업하며 효율적인 의사결정 등으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재형·한아름 부부는 “부부간 대화의 99%가 일 이야기, 부부싸움 10번이면 9.5번은 일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다.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장점이다. 한 작가는 “예술가로서 받는 상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연극 선배라는 점이 좋다”며 “피드백이 직설적이지만 그만큼 작품에 진정성이 담기게 된다”고 했다. 서 연출은 “성격과 취향이 많이 다르지만 좋은 것을 같이 기억하고 공유하는 정서가 있어 이를 작품에 많이 참고한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오케피’를 제작한 공연기획사 샘컴퍼니의 김미혜 황정민 부부.
뮤지컬 ‘오케피’를 제작한 공연기획사 샘컴퍼니의 김미혜 황정민 부부.
오는 18일부터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오케피’에서 배우 황정민은 주연과 연출, 부인 김미혜 샘컴퍼니 대표는 제작을 맡았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황정민은 ‘능력자 아내를 둔 스타’ 1위에 올랐다. 김 대표는 “남편이 영화 촬영 때문에 늘 바빴는데, 함께 작업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게 가장 좋다”며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결정을 내릴 때 늘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는 작품을 연출한 왕용범의 부인 배우 서지영이 엘렌 역으로 출연한다. 두 사람이 함께한 공연은 ‘프랑켄슈타인’ ‘로빈훗’ 등 10편이 넘는다. 왕 연출은 “작품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다른 배우들은 쉽게 말하지 못하지만 지영씨는 아내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6일까지 서울 동숭동 DCF 대명문화공장 1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와 11월 충무아트홀에서 공연한 오페라 ‘리타’ 제작에 참여한 맹성연 음악감독과 배우 양준모도 부부 사이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으로 활약 중인 양준모는 “아내와 공동의 목표를 꿈꿀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며 “‘리타’에 이어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을 함께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