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달라진 송년회
송년회 풍경이 예전같지 않다. 경기 침체에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인원까지 감축하자 연말 분위기가 썰렁하다. 적자 폭이 큰 기업들이 임원을 대폭 줄이고 연봉마저 반납하는 상황이니 그럴 만 하다. 흑자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사무실 조도를 30% 낮출 정도로 힘든 시기여서 송년회는 꿈도 꾸기 어렵게 됐다.

송년 모임을 나눔과 봉사활동으로 대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은 자선모금 활동을 하거나 저소득층에게 연탄·운동화 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모임 형태를 바꾸고 있다. 이랜드그룹처럼 김밥 송년회로 종무식을 대신하는 곳도 있다. 창업 초기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 현장에서 만들어 먹었던 김밥을 통해 초심을 잃지 말자는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다.

송년회를 하더라도 1차로 간단하게 끝내기로 하는 등 예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잡코리아 조사 결과 올해 송년회는 ‘1차로 간단히 혹은 낮에 만나는 등 조용히 보낼 것’이라는 응답이 65.9%로 ‘2차 이상’(34.1%)이라는 답변보다 훨씬 높았다. 횟수도 ‘작년보다 더 적게 참석하거나 비슷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답변이 80%를 넘었다. 비용 또한 ‘작년과 비슷할 것’(49.1%)과 ‘더 적게 사용할 것’(32.6%)이라는 답변이 ‘더 많이 사용할 것’(18.3%)이라는 답보다 높았다.

20~50대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티몬의 설문조사에서도 송년 회식은 ‘공식적으로 1차에서 끝내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53%), ‘모든 일정을 1차에서 마친다’(19%)는 대답이 많았다. ‘3차 이상 간다’는 답은 11%에 불과했다. 1인당 송년회식 비용은 3만~5만원(33.4%)이 가장 많고 1만~3만원(30.4%)이 뒤를 이었다.

왁자하게 먹고 떠드는 술판 대신 작은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른바 문화송년회다. 단란하게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쿠팡의 소비자 수요 조사를 보면 먹자판 송년회가 공연·여행·파티 등을 즐기는 문화로 점차 변하고 있다. ‘호두까기 인형’ ‘오즈의 마법사’ 등 고전 명작 뮤지컬과 ‘옥탑방 고양이’ ‘작업의 정석’ 등 문화공연 판매액이 전월보다 크게 증가했다. 가족여행, 호텔패키지, 레스토랑 식사권, 공연티켓 매출도 20% 늘었다.

송년회 열기가 시들해지면서 회사 주변 식당가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나라 경제나 가계 살림이 좋아져야 연말 분위기가 따뜻해진다. 새해에는 경제가 살아나서 신년회나 송년회 모임도 풍성해지길 기대해 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