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쎄시봉 이야기
쎄시봉은 프랑스어로 “참 좋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국에선 ‘요즘 노래하는 늙은 가수 그룹’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그리고 나 조영남 이렇게 다섯 명을 통칭 쎄시봉 멤버라고 부른다.

어떤 연유로 쎄시봉이 탄생했나.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젊었을 때인 1960년대엔 다방 시대가 있었다. 어딜 가나 다방이 즐비했다. 다방에선 속칭 ‘레지’(원래 영어 ‘레이디’가 일본식으로 변해서 ‘레지’가 된 듯하다)가 주 메뉴인 커피와 홍차를 서빙했다. 그런 다방 중엔 서양에서 들어 온 클래식 음악이나 경음악, 팝송을 틀어주던 곳들이 있었다. 지금의 시청 뒷골목 쪽에 있던 쎄시봉 음악다방도 그런 장소다.

우리 쎄시봉 멤버 중에선 내가 단연 큰형이다. 나머지는 모두 나보다 두 살 어리다. 자기들끼리 친구고, 나만 혼자 형이다. 난 일흔 살이 넘었고, 다른 멤버들은 내년에 칠순이 된다. 평균 연령상 이보다 더 늙은 보컬 그룹이 지구상에 어디 또 있을까.

‘쎄시봉’이란 그룹 이름은 원래 내 후배 중 송창식과 윤형주, 이익균(영화 ‘쎄시봉’에서 군대 가서 그룹에서 나오는 역할을 맡았던 남자 주인공의 실제 모델) 이렇게 세 명이 트리오를 결성하면서 붙인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 그룹이 깨진 뒤 수십 년이 흘렀다.

나와 함께 MBC 라디오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진행 중인 최유라 씨가 어느 날 “아저씨, 아저씨 친구들 불러다가 노래 쇼 특집 한 번 하지 그래요”라고 말했다. ‘나이들 잔뜩 들었는데 그게 될까’ 반신반의하며 수십년 만에 한 번 연락해 봤다. 그런데 웬걸, “노래를 아주 끊었다”던 이장희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날아온 것이다.

수십년 동안 함께 노래한 적이 없어서 노래가 될까 싶었는데 희한하게도 옛날 비슷하게 노래가 나왔다. 그 당시 특집 제목이 ‘조영남과 친구들’이었는데 라디오 방송 사상 최초로 세 번이나 재방송이 나갔다. 그리고 MBC TV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서도 발 빠르게 섭외가 들어와 거기에 출연했다. 그런데 헐! 또 대박을 쳤다.

까맣게 잊혔던 우리 다섯 명이 졸지에 수면 위로 올라와 또다시 쎄시봉의 옛 영화를 맘껏 누리게 됐다. 모두가 말년에 등 따뜻하게 됐단 얘기다.

조영남 <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