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농업에 노무현처럼 솔직해 보라
다른 건 몰라도 농업에 관한 한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각을 존중한다. 임기 마지막 해였으니 2007년이다. 국민과 함께하는 업무보고를 한다며 정부가 대통령과 농어민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장소는 aT센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자리에서다. 노 대통령은 농업에 대한 생각을 작심한 듯 쏟아냈다. 충격적이었다. 그의 직선적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상대가 농민이었다. 그렇게 솔직한 이야기가 나올지는 몰랐다.

“농업도 시장 안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시장의 힘과 원리에 따라 지배되는, 시장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이게 무슨 소린가. 어떤 정치인도 꺼내들지 못하던 화두다. 그의 이야기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농산품도 상품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른 상품과 현저히 다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상품으로서 경쟁력이 없다면 농사를 더 이상 지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농사를 포기하자는 얘기는 아니라고 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논의해보자는 뜻이라고 했다.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농민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보호해야 되는 산업 중의 한 영역일 뿐이라면서 말이다. 정부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곳에 투자할 것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곳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측면에서 농업은 다른 산업과 이제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도 했다.

참석했던 농민들이 불쾌했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한 참석자는 질문 기회를 얻어 대통령에게 대놓고 기분이 나쁘다고 했을까. 임기 말에 무슨 말은 못하냐는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앞뒤를 다 따져도 농업에 대해 그렇게 솔직하게 말한 정치인은 없었다. 농업은 그저 표였을 뿐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라. 그가 퇴임한 직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진보 세력은 모두 광우병 몰이에 나섰고, 보수들도 진실은 외면한 채 이명박 정부의 불통만을 나무랐다. 노 대통령은 aT센터 마무리 발언에서 이런 말을 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광우병 소가 들어온다며 투쟁하는데, 이 나라의 진보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정직하지 않다”고 말이다. FTA를 접는다고 미국이 소고기 시장 개방을 요구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2012년 대선에 나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후보는 농업은 시장에서만 풀 문제는 아니라며 원론만을 되풀이했다. 농업에 대한 철학의 부재다. 문재인 후보도 노무현의 시장론을 철저히 외면했다. 집권에 필요한 것은 농업의 미래가 아닌 농민의 표였다. 한·미 FTA 재협상 카드를 내걸었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FTA 상생기금을 꺼내든 것도 그때다. 한·중 FTA 국회 비준과 함께 여·야·정이 야합한 상생기금이라는 것이 야당 대선 후보의 공약이라는 얘기다.

농민들은 또 어떤가. 여전히 생떼를 부리며 거리를 무법천지로 만드는 것이 농민이요, 농업운동가들이다. 농업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가까이가 국가 재정투자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농민들이 과연 농정 불신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말한 것도 노 대통령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이후 20년간 시장 개방 때마다 쏟아부은 보조금이 200조원이다. 예산은 간 곳이 없고 농어업 경쟁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정치인들과 정부는 우리의 농업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국회의원들은 정말로 한·중 FTA가 농민들을 죽인다고 생각할까. 정부 기관이 예측한 농업 피해 예상액은 4800억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농민들이 죽어 나간다며 기업 등을 압박해 1조원의 상생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아무리 총선을 앞뒀다 한들 이게 말이 되는가.

FTA 상생기금에 대한 준조세 논란이 심각해지자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통상 실무를 총괄한다는 인물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기업들에 기금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고 했다. 자발적이라고도 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기금에 찬성하는 기업은 한 곳도 없다. 공무원이 국민을 이렇게 희롱해도 되는가.

농업도 시장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다. 좌우를 떠나 노무현처럼 솔직하라. 그게 두렵다면 적어도 거짓말은 말라. 정치가 농업의 구조조정을 더 이상 늦춰서는 곤란하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