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인의 위대함을 재는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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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해야 할 우리 사회 장묘문화
나라 위해 헌신해온 지도층 스스로
장례·묘역 크기 줄이는데 앞장서야"
류동길 <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나라 위해 헌신해온 지도층 스스로
장례·묘역 크기 줄이는데 앞장서야"
류동길 <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김 전 대통령 장례식은 국가장으로 치러졌다. 2009년 작고한 두 전직 대통령 장례의 격이 국민장과 국장으로 갈려 뒷말이 많았다. 그래서 국민장과 국장을 통합한 게 국가장이다.
공과가 없는 인물은 없지만 조문정국에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은 크게 조명됐다.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적절하게 애도하고 장례를 경건하게 치르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마땅한 도리요 예의다. 묘역이 명당이니 봉황알이니 하는 이야기에 휩쓸리고 풍수지리를 따지는 게 고인을 추모하고 기리는 일은 아니다. 진짜 할 일은 따로 있다.
우리 사회의 장묘(葬墓)문화를 바꿔야 할 필요성은 절실하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고 아직도 화장 비율은 낮고 묘역은 넓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도층이 앞장서는 일이다. 우선 국가가 먼저 국가원수를 비롯해 지도층의 묘역부터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미 조성된 묘역과의 격차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도자가 있을까. 장례의 격과 묘역의 크기가 고인의 위대함을 재는 잣대는 결코 아니다.
국가원수 묘역은 264㎡(80평), 묘역으로 이어지는 계단까지 포함하면 495㎡(150평) 정도다. 고인의 업적과 역사적 평가는 장례의 격과 묘역의 넓이와는 관련이 없다. 화장해서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 세우라는 유서를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점에서 오히려 돋보였다. 가족장이었으면 좋았을 법했는데 국민장으로 치렀다. 묘소에는 고인의 뜻과 달리 크고 묵직한 돌비석이 있고 그 주변의 넓은 지역이 국가보존묘지로 지정돼 있다. 고인의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초대 주베트남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봉분을 쓰는 26.4㎡(8평)의 장군 묘지를 마다하고 그의 뜻대로 봉분 없는 3.3㎡(1평)의 사병 묘지에 묻혔다. 그는 건군 이후 병사묘역에 묻힌 최초의 장군이 됐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병사와 함께 한 ‘참군인’, ‘참장군’의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생가 한쪽에 묻혀 있다. 미국 알링턴국립묘지에는 장군과 장교, 사병의 묘지 구분도 없이 묘지 면적은 4.49㎡(1.36평)다. 사망일시와 알파벳 순서에 따라 계급 구분 없이 순서대로 안장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묘지도 봉분도, 묘비도 없이 알링턴에 있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는 베를린 공원묘지에,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그의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고 고향 공동묘지의 딸 곁에, 미테랑 전 대통령도 그의 고향마을 가족묘지에,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평소 희망한 대로 집 근처 교회 가족묘지에 묻혔다. 중국의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은 재가 돼 국토에 뿌려졌다.
국가원수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장묘문화가 바뀐다. 대통령을 지낸 이들 중에서 스스로 가족장으로 치르고 고향마을 또는 일반국민의 곁에 잠들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는 이가 앞으로 나오지 않을까. 그런 전례가 있어야 다음 대통령도, 국가적 지도자도 따르는 일이 이어질 것이다. 대통령을 지낸 이가 고향마을에 묻히고 거기에 기념관이 세워지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큰 업적을 남긴 지도자가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묘소에서 찾아오는 일반 국민과 안식을 누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지 않은가. 그런 이는 살아서도 민주주의, 죽어서도 민주주의를 실천한 참된 지도자일 것이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남긴 발자취와 삶의 무게는 다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애쓴 분들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예우를 하고 그를 기리는 기념관을 세우거나 사업을 벌이는 게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은 장례를 크게 치르고 묘역을 넓고 호화스럽게 만드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류동길 <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공과가 없는 인물은 없지만 조문정국에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은 크게 조명됐다.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적절하게 애도하고 장례를 경건하게 치르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마땅한 도리요 예의다. 묘역이 명당이니 봉황알이니 하는 이야기에 휩쓸리고 풍수지리를 따지는 게 고인을 추모하고 기리는 일은 아니다. 진짜 할 일은 따로 있다.
우리 사회의 장묘(葬墓)문화를 바꿔야 할 필요성은 절실하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고 아직도 화장 비율은 낮고 묘역은 넓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도층이 앞장서는 일이다. 우선 국가가 먼저 국가원수를 비롯해 지도층의 묘역부터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미 조성된 묘역과의 격차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도자가 있을까. 장례의 격과 묘역의 크기가 고인의 위대함을 재는 잣대는 결코 아니다.
국가원수 묘역은 264㎡(80평), 묘역으로 이어지는 계단까지 포함하면 495㎡(150평) 정도다. 고인의 업적과 역사적 평가는 장례의 격과 묘역의 넓이와는 관련이 없다. 화장해서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 세우라는 유서를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점에서 오히려 돋보였다. 가족장이었으면 좋았을 법했는데 국민장으로 치렀다. 묘소에는 고인의 뜻과 달리 크고 묵직한 돌비석이 있고 그 주변의 넓은 지역이 국가보존묘지로 지정돼 있다. 고인의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초대 주베트남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봉분을 쓰는 26.4㎡(8평)의 장군 묘지를 마다하고 그의 뜻대로 봉분 없는 3.3㎡(1평)의 사병 묘지에 묻혔다. 그는 건군 이후 병사묘역에 묻힌 최초의 장군이 됐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병사와 함께 한 ‘참군인’, ‘참장군’의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생가 한쪽에 묻혀 있다. 미국 알링턴국립묘지에는 장군과 장교, 사병의 묘지 구분도 없이 묘지 면적은 4.49㎡(1.36평)다. 사망일시와 알파벳 순서에 따라 계급 구분 없이 순서대로 안장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묘지도 봉분도, 묘비도 없이 알링턴에 있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는 베를린 공원묘지에,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그의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고 고향 공동묘지의 딸 곁에, 미테랑 전 대통령도 그의 고향마을 가족묘지에,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평소 희망한 대로 집 근처 교회 가족묘지에 묻혔다. 중국의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은 재가 돼 국토에 뿌려졌다.
국가원수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장묘문화가 바뀐다. 대통령을 지낸 이들 중에서 스스로 가족장으로 치르고 고향마을 또는 일반국민의 곁에 잠들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는 이가 앞으로 나오지 않을까. 그런 전례가 있어야 다음 대통령도, 국가적 지도자도 따르는 일이 이어질 것이다. 대통령을 지낸 이가 고향마을에 묻히고 거기에 기념관이 세워지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큰 업적을 남긴 지도자가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묘소에서 찾아오는 일반 국민과 안식을 누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지 않은가. 그런 이는 살아서도 민주주의, 죽어서도 민주주의를 실천한 참된 지도자일 것이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남긴 발자취와 삶의 무게는 다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애쓴 분들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예우를 하고 그를 기리는 기념관을 세우거나 사업을 벌이는 게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은 장례를 크게 치르고 묘역을 넓고 호화스럽게 만드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류동길 <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