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생활 30년간 치부(致富)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집이 서울 강남에서 강북으로 옮겨졌고, 넓이도 줄었으니 살림을 엉망으로 한 셈이다. 그나마 직장이 있고 집이라도 유지하니 전세대란, 취업대란에 시달리는 국민 앞에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래도 필자가 굳이 이런 얘길 꺼내는 것은 아내 때문이다.

필자의 장인어른은 국세청에 다니다 정년퇴임했다. 청렴과 검소가 몸에 배셨다. 장모님이 “이 고생을 딸이 또 하게 할 순 없다”며 필자와 아내의 결혼을 반대할 때 “공무원을 돈 때문에 하느냐”며 한 번에 꺾은 분이 장인어른이다.

아내는 장인어른을 꼭 닮았다. 백화점 옷을 아직 한 번도 몸에 걸친 적이 없다. 해외에서 명품 브랜드 옷을 몇 벌 사긴 했지만, 대부분 아침부터 줄 서가며 이월 할인상품을 산 것이다. 필자로서는 자존심이 좀 상하고 이해도 잘 안 됐다.

최근 “5년 전 산 통바지가 다시 유행이 돌아와 입을 수 있게 됐다”고 자랑하는 아내와 좀 다퉜다. “다시 유행이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헛된 소비를 한 것 아니냐”고 하자 “유행이 안 돼도 결국은 입을 것이니 걱정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난한 집 살림살이 많다’고 했듯, 좁은 우리집에는 각종 묵은 살림이 꽉 차 있다. “버리지 않고 놔두면 다 쓸모가 있고, 당장은 필요 없는 물건이라도 싸면 사 둬야 한다”는 게 경제학과 출신 아내의 독자적 경제이론이다. “싼 물건도 소비하는 사람에 따라 비싼 물건만큼의 효용이 있다”는 것이다. “소득 대비 효용 계산 시 소득이 적은 사람은 분모가 작아져 행복지수가 높게 나올 수 있다”는 분석과 함께.

필자가 오죽 못 벌어 주면 저렇게까지 이론 무장을 할까. 하지만 오히려 우리집의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아무리 행복할지라도 몸 움직일 공간마저 부족해진 집안 정리를 위해 이번 주말에는 결단을 내려 오래된 건 좀 버리려고 한다. 차마 자기 것을 못 버리는 아내를 위해 서로의 것을 마주 버리는 시간을 가질까 한다. 결국은 내 것만 버리게 될 것이라 짐작되지만. 이번 주말에도 실패한다면 특단의 조치를 내리려 한다. 옷 하나 사면 묵은 옷 하나 버리고, 신발 하나 사면 제일 오래된 신발 하나 버리는 ‘물건 총량제’ 말이다.

최동규 < 특허청장 dgchoi15@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