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경기부양책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4일(현지시간) 아시아 증시가 동반 하락하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ECB가 전날 시중은행의 예치금에 적용하는 금리를 0.1%포인트 인하하고, 양적 완화 종료시점을 6개월 연장하기로 한 통화정책회의 결과에 대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가 바주카포 대신 소총을 쐈다”고 평가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기부양을 위해 드라기 총재가 대량의 돈 풀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는데,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드라기 총재가 그동안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조치를 내놓았지만 이번에는 기록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ECB는 이번 통화정책회의에서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예치할 때 적용하는 금리를 연 -0.2%에서 연 -0.3%로 낮추고, 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 완화 기간을 내년 9월에서 2017년 3월까지로 연장했다. FT는 시장이 월 600억유로인 양적 완화 규모가 750억유로로 늘어나고, 예치금 금리도 연 -0.4%까지 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고 전했다.

회의 결과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외환시장이었다. 3일 ECB 발표 직후 유로화 가치는 수직상승했다.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는 유로당 1.06달러에서 1.09달러로 3.16% 급등했다. 하루 상승폭으로는 6년 만에 최대다. 같은 날 유럽과 미국 증시도 급락했다. 범유럽 대표지수인 유로스톡스50지수는 3.61%, 독일 DAX지수는 3.58% 떨어졌다.

미국 뉴욕증시는 재닛 옐런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오는 15~1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강력히 시사한 영향까지 겹쳐 S&P500지수가 1.44% 급락하는 등 약세를 보였다. ECB 양적 완화에 대한 시장의 ‘실망’은 4일 아시아 증시에도 영향을 미쳐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2.27%,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67% 하락했다.

ECB 통화정책회의 후 금융시장이 요동친 것에 대해 드라기 총재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해석과 시장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분석이 엇갈렸다.

옐런 의장은 이날 미 상·하원 합동 경제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미국의 경제여건을 보면 기준금리 인상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노동부가 지난달 비농업부문 신규고용이 시장 예상치(약 20만건)를 웃도는 21만1000건에 달했다고 발표한 것도 12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높였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