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수도권 규제 완화할 때 됐나
수도권 규제 완화 여부를 놓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규제 완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쪽에서는 지금도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면서 지역 균형발전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 막 지방 발전의 걸음마를 떼려는 단계에서 수도권 규제를 푸는 것은 지역 균형발전정책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수도권 규제가 사라지면 쏠림 현상이 가속화돼 지방에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완화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균형발전과 수도권 규제는 큰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수도권에 공장을 못 짓게 한다고 해서 지방에 공장이 들어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사례가 잇따라 국가적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공장 증설을 못 하는 기업들의 애로도 상당하다고 지적한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도권을 규제하는 대신 더 발전시키는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도 들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도 수도권 육성으로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논리다. ‘수도권 규제 완화 필요한가’를 주제로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과 정초시 충북발전연구원 원장이 찬성과 반대 관점에서 펼친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찬성 / 英·佛·日 등 선진국도 규제 없애…수도권을 글로벌 메가시티로 육성

변화된 상황 맞춰 새로운 국토발전 전략 짜야


[여론광장] 수도권 규제 완화할 때 됐나
수도권 규제는 공장과 같은 인구집중 유발 시설의 수도권 내 새로운 증설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인 경우에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규제다. 1982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제정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수도권 내 공장의 신·증설을 억제한다는 수도권 규제의 근본적인 내용은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에도 그대로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수도권 규제의 목적은 수도권의 질서 있는 발전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법률에도 없는 국토의 균형발전이 수도권 규제의 목적처럼 여겨지게 됐다. 정부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고 하면 반대론자들은 ‘규제를 완화하면 지방경제가 다 죽게 된다’고 아우성을 친다. 이들은 수도권 규제 완화는 지역 균형발전이 이뤄진 이후에나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수도권에 공장을 못 짓게 하면 지방에 지을 것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아니면 지방’이라는 규제의 풍선 효과는 국가 간 자본이동의 장벽이 사라진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수도권에 대한 공장 신·증설을 규제하면 지방에 투자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기업들은 중국 베트남 등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대거 생산 거점을 옮겼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도권에 투자 계획이 있는 기업 네 곳 중 하나는 수도권 규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해외로 이전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아울러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 지방 공장이 수도권으로 대거 이전해 지방에 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도 비현실적이다. 해당 지역에 이미 형성돼 있는 협력사와의 관계, 수도권의 공장용지 가격 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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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수도권 규제가 국가 경제와 기업 경영에 미친 폐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물적·인적 자원이 집적된 수도권에서 기업 입지를 직접 규제하면서 비효율적인 생산이 이뤄져 국가 전체적으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발표됐다. 기업들의 경영 애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공장 증설 애로로 인해 기형적으로 뒤틀어진 생산라인, 투자를 포기한 외국인 투자기업, 유통시설 등을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설립하면서 발생하는 거래 비용 등 문제가 무수히 많다.

일본을 비롯해 선진국들은 이미 수도권 규제를 폐지하고,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수도권을 메가시티로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2002년에 40년간 시행해 온 수도권 규제를 폐지하고 최근 국제종합특구, 국가전략특구 등의 지정을 통해 수도권 발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도 이미 오래전에 수도권 규제를 폐지했다. 대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수도권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 아래 ‘런던플랜’ ‘그랑파리 프로젝트’ 등을 통해 런던과 파리를 글로벌 메가시티로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역을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보는 한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어렵다. 선(先) 지역발전 주장은 어느 정도를 지역 발전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개념도 정의도 없는 구호에 불과하기 때문에 불합리한 규제를 영원히 지속하자는 주장과 같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국토 전체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차원에서 수도권 규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국토 정책에서 수도권 규제를 폐지하고, 수도권과 지방이 같이 발전할 수 있는 ‘수도권을 포함한 거점 대도시권 발전전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지역별로 자율적으로 규제와 지원 내용을 차등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서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안이다.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문제라고 차일피일 미루기에는 국내외 환경 변화가 급박한 것 같다.

반대 / 규제 없애면 수도권 집중 더 가속화…청년 빠져나가면 지방 공동화 될 것

문닫는 마을 생길 수도…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 저하

[여론광장] 수도권 규제 완화할 때 됐나
우리나라 헌법 123조 2항에는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지역 균형발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보편적 가치로서 마땅히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몇 가지 통계만 보더라도 지역 균형발전의 부정적 지표인 수도권 집중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면적 11.8%에 인구 비중 49.4%, 취업자수 비중 50.2%, 지역총생산 비중 48.7%, 신규 창업 법인수 60.0% 등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재량적 지역경제정책의 지표로 볼 수 있는 1인당 지방세 징수액도 전국 평균에 비해 서울은 약 40% 이상 높다. 건강관리 지표로 볼 수 있는 의사수 비중도 53.8%에 달하는 등 수도권 집중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과 맞물려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수도권 규제를 완전히 철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기업가들의 투자를 유인해 단기적 경제성장 촉진과 고용창출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책은 심각한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예측한 대로 수도권 규제완화를 통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와 고용창출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이것은 지역경제의 희생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특히 미래 국가 경쟁력의 결정요인이 인구라고 봤을 때,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절대 인구규모 감소와 함께 지역별 인구 연령별 구성을 크게 왜곡시킬 것이다. 비(非)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의 인구이동의 가장 큰 특징은 20~34세의 청년층이 주류라는 점이다.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현상은 수도권에 일자리, 특히 양질의 일자리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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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현상을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가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원천인 인구규모 및 인구구성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것이 확실하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98로 1 미만에 들어선 데 반해 비수도권은 1.4~1.5 정도의 합계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의 수도권 이동이 가속화되면 이들의 생활비 증가 및 결혼과 육아에 따른 비용 증대로 애 낳기를 꺼려 수도권의 출산율을 계속 떨어뜨릴 것이다. 한국은 2030년을 정점으로 이후 인구 규모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수도권 규제를 철폐한다면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 가속화로 청년출산율 감소, 이로 인한 절대인구 감소 시기가 훨씬 앞당겨질 것이 확실하다. 더 큰 문제는 출산율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인구규모 감소를 지탱하는 요인인 기대수명 증가로 인한 고령화 현상이다. 비수도권은 수도권에 비해 고령화율이 거의 두 배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 청년층의 공동화는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문을 닫는 마을도 다수 생겨날 것이다.

수도권 집중은 정부가 그간 추진해온 지역 균형발전정책과도 모순된다. 정부는 그동안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세종시 건설, 혁신도시 건설 등을 추진해왔다. 이와 함께 각 지방 거점지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해 대기업과 지방기업들 간의 협력을 통한 상생발전을 유도하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런 정책들이 실질적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더불어 지방자치단체와 지역민의 발전의지 등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 이제 막 지역 균형발전의 걸음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단계에서 ‘기요틴으로 수도권 규제에 관련한 모든 장치를 철폐’하려는 정책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지역 균형발전정책을 포기하려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기존의 수도권 규제완화 조치들로 충분하다. 더 이상의 규제철폐는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다. 지금은 수도권 규제완화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 균형발전을 논의할 때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