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날을 보내며] 신기술 선도해야 한국 수출 산다
올해 40여년 만의 극심한 가뭄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중부지역은 댐 저수량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다행히도 지난달에 단비가 내려 해갈에 큰 도움이 됐다.

지난달 말 한국 무역에도 학수고대하던 ‘단비’가 내렸다. 한·중, 한·베트남,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에서 비준된 것이다. 올 한 해 한국의 무역 환경도 매우 가물었다. 세계 경기 둔화로 글로벌 교역이 감소했다. 저유가로 수출 단가가 하락했고, 엔화와 유로화 약세로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도 저하됐다. 이런 상황에서 FTA 발효는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비(非)관세 장벽을 완화해 수출 부진을 타개할 계기를 마련하는 단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통상 환경과 수출 여건은 항상 변화했다. 돌이켜 보면 한국 무역에는 세 차례의 대전환이 있었다. 이제 ‘무역 3.0’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무역 1.0은 첫 수출을 시작한 때부터 1990년대 초까지로 의류, 신발 등 경공업 제품 위주였다. 자원과 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 주도로 노동집약적이고 가격 경쟁력 위주인 수출 정책을 추진했다. 한국 무역 2.0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기술력과 대량 생산 체제를 기반으로 한 대기업 중심의 수출이 주를 이루는 시기다. 때마침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가 막을 내리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세계무역기구(WTO)가 발족했다. 더 이상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부 주도의 수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적절한 변화였다고 본다. 자동차, 반도체, 선박, 무선통신기기 등이 주력 수출품목으로 부상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이제 한국무역 3.0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간의 기술추격형(fast follower) 전략을 탈피해 새로운 기술을 선도(first mover)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대량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가격 경쟁력도 중국 등 신흥국에 비해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자 및 다자 FTA로 대변되는 세계 통상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 무역과 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무역 3.0 시대에는 세 가지 차원의 다변화와 다각화가 중요하다. 첫째, 수출 품목의 다각화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화장품, 신약 등이 새로운 수출유망 품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창조와 혁신을 덧입힌 새로운 고부가가치 제품을 더 많이 발굴해 주력 품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화장품, 생활가전 등 소비재는 한·중 FTA와 한류 붐 등으로 수출 청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둘째, 수출 기업의 다양화다. 수출 저변을 중소·중견기업으로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새로운 수출 동력을 확보할 수 있으며 우리 수출의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다.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중소기업의 수출 문턱이 낮아진 점은 고무적이다. 중소·중견기업 수출 비중이 2013년 32.8%에서 올 들어 35% 이상으로 확대됐다.

마지막으로 수출 시장의 다변화다. 한·중 FTA를 중국 내수시장 진출 계기로 적극 활용하는 한편 앞으로 예정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다자간 메가 FTA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경제제재 해제로 시장이 열리는 이란과 쿠바와 같은 새로운 시장으로도 적극 진출해야 한다.

지난 5일은 ‘제52회 무역의 날’이었다. 그동안 한국 무역은 양적, 질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최근 들어 수출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2011년 이후 4년간 이어오던 무역 1조달러 달성도 힘든 형편이다. 그러나 모두가 힘을 모은다면 무역 3.0 시대에도 세계 무역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윤상직 <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