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의 데스크 시각] 이상한 구조조정…김 부장은 외롭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하영춘 산업부장 hayoung@hankyung.com
연말 송년모임에서 후배를 만났다. 대기업 부장으로 잘나가는 그였다. 힘이 하나도 없길래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사실상 그만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두가 놀라는 사이, “그만두라는 사인을 받았는데 버틸 재간이 없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입사 21년차의 이제 40대 후반. ‘정년 60세’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그는 어쩔 수 없이 짐을 싸기로 했단다. 회사가 조직을 축소하면서 임원 승진 기회가 적어졌고, 보직 이동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한직으로 발령내는 상황에서 정년 60세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임원 승진 기회는 줄어들고…
연말 인사철이다. 삼성그룹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임원 승진자를 발표하고 있다. 승진 연한을 2~3년 뛰어넘어 ‘별’을 단 샐러리맨 신화는 올해도 빠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올 인사철 분위기는 왠지 썰렁하다. 대부분 회사에서 퇴임한 임원 수가 승진한 임원보다 많다고 한다. 삼성그룹 전체적으론 상무 이상 임원 수가 200명가량 줄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잘린’ 임원이 많다는 의미다. 미증유의 위기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게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그래도 임원을 했다가 그만둔 사람은 괜찮다. 연봉도 많이 받았고, 잘하면 갈 데도 있다. 임원 승진 기회를 노리다 시기를 잘못 만나 집에 가야 하는 부장들보다는 훨씬 낫다.
비단 임원인사 때만은 아니다. 이른바 ‘김부장, 이차장’은 외롭다. 이들의 말을 빌리면 ‘동네북 신세’다. 회사가 어려워져 구조조정을 할라치면 최우선 대상으로 이들이 거론된다. 당장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조선업계만 봐도 그렇다. 대우조선해양은 얼마 전 20년 이상 근무한 부장급 직원 1300여명 중 300여명을 내보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4조여원을 지원받는 대가였다. 이들보다 근속 연수도 길고 나이도 많은 생산직 직원들도 많았으나 손도 대지 못했다.
노조원은 손 못대는 구조조정
현대중공업도 그랬다. 올해 초 과장급 이상 사무직 직원과 15년 이상 재직한 여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아 1300여명을 내보냈다. 역시 숫자가 많은 생산직 직원은 포함하지 않았다. 지난달 현대중공업그룹 사장단이 흑자를 낼 때까지 급여를 반납하기로 결의할 때도 부장급 450여명은 급여의 10%를 반납하기로 ‘동참’했다. 간부라는 이유에서다.
대부분 기업의 부·차장들은 1990년대 중반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외환위기를 겪은 세대다. 가까스로 살 만한가 싶었는데, 경기 불황이 길어지면서 애꿎은 존재가 됐다.
김부장 이차장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은 한국만의 이상한 구조조정 시스템도 한몫했다. 구조조정은 몸집을 가볍게 하면서도 회사의 핵심역량을 보존해야 효과가 있다. 그런데 한국은 아니다. 아무리 성과를 내지 못해도 노조원은 일단 제외된다. 생산량이 줄어 공장이 멈춰도 생산직은 줄이지 못한다. 대신 만만한 게 ‘김부장, 이차장’이다. 이들의 급여는 상대적으로 많다. 내보내면 가시적 효과가 크다. 노조원도 아니다. 반강제적으로 나가라고 해도 시끄럽지 않다. 임원으로 승진시키지 않고 한직으로 발령내면 안 나갈 재간이 없다.
불투명한 새해 경제로 인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연말, 이상한 구조조정 시스템 때문에 ‘김부장, 이차장’의 속앓이가 깊어 가는 세밑이다.
하영춘 산업부장 hayoung@hankyung.com
임원 승진 기회는 줄어들고…
연말 인사철이다. 삼성그룹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임원 승진자를 발표하고 있다. 승진 연한을 2~3년 뛰어넘어 ‘별’을 단 샐러리맨 신화는 올해도 빠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올 인사철 분위기는 왠지 썰렁하다. 대부분 회사에서 퇴임한 임원 수가 승진한 임원보다 많다고 한다. 삼성그룹 전체적으론 상무 이상 임원 수가 200명가량 줄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잘린’ 임원이 많다는 의미다. 미증유의 위기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게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그래도 임원을 했다가 그만둔 사람은 괜찮다. 연봉도 많이 받았고, 잘하면 갈 데도 있다. 임원 승진 기회를 노리다 시기를 잘못 만나 집에 가야 하는 부장들보다는 훨씬 낫다.
비단 임원인사 때만은 아니다. 이른바 ‘김부장, 이차장’은 외롭다. 이들의 말을 빌리면 ‘동네북 신세’다. 회사가 어려워져 구조조정을 할라치면 최우선 대상으로 이들이 거론된다. 당장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조선업계만 봐도 그렇다. 대우조선해양은 얼마 전 20년 이상 근무한 부장급 직원 1300여명 중 300여명을 내보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4조여원을 지원받는 대가였다. 이들보다 근속 연수도 길고 나이도 많은 생산직 직원들도 많았으나 손도 대지 못했다.
노조원은 손 못대는 구조조정
현대중공업도 그랬다. 올해 초 과장급 이상 사무직 직원과 15년 이상 재직한 여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아 1300여명을 내보냈다. 역시 숫자가 많은 생산직 직원은 포함하지 않았다. 지난달 현대중공업그룹 사장단이 흑자를 낼 때까지 급여를 반납하기로 결의할 때도 부장급 450여명은 급여의 10%를 반납하기로 ‘동참’했다. 간부라는 이유에서다.
대부분 기업의 부·차장들은 1990년대 중반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외환위기를 겪은 세대다. 가까스로 살 만한가 싶었는데, 경기 불황이 길어지면서 애꿎은 존재가 됐다.
김부장 이차장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은 한국만의 이상한 구조조정 시스템도 한몫했다. 구조조정은 몸집을 가볍게 하면서도 회사의 핵심역량을 보존해야 효과가 있다. 그런데 한국은 아니다. 아무리 성과를 내지 못해도 노조원은 일단 제외된다. 생산량이 줄어 공장이 멈춰도 생산직은 줄이지 못한다. 대신 만만한 게 ‘김부장, 이차장’이다. 이들의 급여는 상대적으로 많다. 내보내면 가시적 효과가 크다. 노조원도 아니다. 반강제적으로 나가라고 해도 시끄럽지 않다. 임원으로 승진시키지 않고 한직으로 발령내면 안 나갈 재간이 없다.
불투명한 새해 경제로 인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연말, 이상한 구조조정 시스템 때문에 ‘김부장, 이차장’의 속앓이가 깊어 가는 세밑이다.
하영춘 산업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