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가·기술자가 용(龍)이 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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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강화되는 법조인의 특권
'기업계 龍'은 먼 옛날의 꿈 같은 일
경제를 짊어진 이들이 주역이어야
이제민 <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
'기업계 龍'은 먼 옛날의 꿈 같은 일
경제를 짊어진 이들이 주역이어야
이제민 <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
사법시험 존치를 놓고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법조계를 중심으로 찬성하는 쪽에서는 입법을 서두르고 있고, 반대하는 로스쿨 측은 학생들이 집단 자퇴를 하겠다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사법시험을 존치하자는 주장의 근거는 로스쿨 수학에 많은 비용이 들어서 과거처럼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사법시험도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고시 낭인’을 양산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사법시험이든 로스쿨이든 법조인이 되는 과정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좋은 직업을 갖는 데 공짜가 없지만, 그만큼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처럼 고비용을 지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법조인이 ‘용(龍)’이 되는 현실 때문이다.
용은 전근대 동양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원래 군주에 적용된 개념이지만 군주와 같이 백성 위에 군림한 고위 관료도 작은 용이었다. 이들이 군림한 기반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이들과 평민 사이에 적용하는 ‘법’이 달랐다. 적용하는 법이 다르면 정치·경제·사회적 지위가 다를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모두들 법 앞에서 우월한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선조들이 과거(科擧)에 목을 맨 것은 그런 이유였다. 지식인층인 선비가 모두 그랬으니 사회에 필요한 다른 지식은 제대로 생산되지 않았다.
물론 그 뒤 세상은 바뀌었다. 갑오경장 이후 법 앞의 평등 원칙이 도입되고 건국 후 헌법에도 명시됐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가. 법 앞의 평등이 실현되기는 어느 나라나 어렵지만, 한국은 법을 운영하는 법조인과 여타 국민 사이에 불평등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반인을 수사하고 재판하는 것은 법조인이지만, 법조인은 스스로 수사하고 재판한다. 장관이나 4성 장군도 수천만원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데 전관예우로 수십억원씩 먹는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는 예가 없다. 국회에라도 들어가면 더 큰 용이 될 뿐 아니라 대권을 향한 진짜 ‘용꿈’도 꿀 수 있다. 이런 구도에서는 사법시험이든 로스쿨이든 고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중산층 이상이다. 그런 구도에서는 ‘개천에서 난 용’도 대다수가 개천 사람들을 돕기보다는 새로 움켜잡은 특권을 누리고 지키려 할 뿐이다.
이런 구도는 사회적으로 불공정할 뿐 아니라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당장 한국 경제성장의 새로운 돌파구는 서비스산업이라는 문제가 있다. 과거 법조계 못잖게 기득권이 판치던 학계가 대학 간 경쟁구도와 세계화로 상당히 구조조정이 된 시점에서 법조계는 가장 후진적인 서비스산업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법치의 확립’은 경제발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선진국이 되고도 지속적 발전을 못한 이탈리아나 그리스 같은 나라를 보면 법치가 확립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법 앞에서 특권을 누리는 집단이 있으면 누구나 그 집단에 들어가려 한다. 능력이 없어서 못할 뿐이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기업가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자는 재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 특권을 좇는 것이 일반화된 사회에서는 사회에 필요한 다른 재능과 지식은 충분히 생산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혁신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 가는 기업가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자가 진짜 용이었다. 한국 경제발전의 역설은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이들이 용이 되는 구도가 아니라 오히려 법조인이 용이 되는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정주영, 이병철 회장 같이 창업을 통해 기업계의 용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학기술에서는 자칭·타칭 천재들이 물리학이나 전자공학에 도전하던 시절은 먼 과거의 꿈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한국이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려면 무엇보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사법시험 존치를 둘러싼 갈등은 그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민 <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
문제는 사법시험이든 로스쿨이든 법조인이 되는 과정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좋은 직업을 갖는 데 공짜가 없지만, 그만큼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처럼 고비용을 지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법조인이 ‘용(龍)’이 되는 현실 때문이다.
용은 전근대 동양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원래 군주에 적용된 개념이지만 군주와 같이 백성 위에 군림한 고위 관료도 작은 용이었다. 이들이 군림한 기반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이들과 평민 사이에 적용하는 ‘법’이 달랐다. 적용하는 법이 다르면 정치·경제·사회적 지위가 다를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모두들 법 앞에서 우월한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선조들이 과거(科擧)에 목을 맨 것은 그런 이유였다. 지식인층인 선비가 모두 그랬으니 사회에 필요한 다른 지식은 제대로 생산되지 않았다.
물론 그 뒤 세상은 바뀌었다. 갑오경장 이후 법 앞의 평등 원칙이 도입되고 건국 후 헌법에도 명시됐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가. 법 앞의 평등이 실현되기는 어느 나라나 어렵지만, 한국은 법을 운영하는 법조인과 여타 국민 사이에 불평등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반인을 수사하고 재판하는 것은 법조인이지만, 법조인은 스스로 수사하고 재판한다. 장관이나 4성 장군도 수천만원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데 전관예우로 수십억원씩 먹는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는 예가 없다. 국회에라도 들어가면 더 큰 용이 될 뿐 아니라 대권을 향한 진짜 ‘용꿈’도 꿀 수 있다. 이런 구도에서는 사법시험이든 로스쿨이든 고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중산층 이상이다. 그런 구도에서는 ‘개천에서 난 용’도 대다수가 개천 사람들을 돕기보다는 새로 움켜잡은 특권을 누리고 지키려 할 뿐이다.
이런 구도는 사회적으로 불공정할 뿐 아니라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당장 한국 경제성장의 새로운 돌파구는 서비스산업이라는 문제가 있다. 과거 법조계 못잖게 기득권이 판치던 학계가 대학 간 경쟁구도와 세계화로 상당히 구조조정이 된 시점에서 법조계는 가장 후진적인 서비스산업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법치의 확립’은 경제발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선진국이 되고도 지속적 발전을 못한 이탈리아나 그리스 같은 나라를 보면 법치가 확립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법 앞에서 특권을 누리는 집단이 있으면 누구나 그 집단에 들어가려 한다. 능력이 없어서 못할 뿐이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기업가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자는 재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 특권을 좇는 것이 일반화된 사회에서는 사회에 필요한 다른 재능과 지식은 충분히 생산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혁신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 가는 기업가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자가 진짜 용이었다. 한국 경제발전의 역설은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이들이 용이 되는 구도가 아니라 오히려 법조인이 용이 되는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정주영, 이병철 회장 같이 창업을 통해 기업계의 용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학기술에서는 자칭·타칭 천재들이 물리학이나 전자공학에 도전하던 시절은 먼 과거의 꿈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한국이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려면 무엇보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사법시험 존치를 둘러싼 갈등은 그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민 <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