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진
윤혜진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의 최종 리허설이 시작됐다. 깜깜하던 공연장이 밝아졌다.

하지만 무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높낮이가 다른 책상과 금속 구조물뿐이었다. 두리번거리는 관객 사이로 3층 객석 오른쪽에서 누군가 머리를 내밀었다. 순식간에 천장으로 훌쩍 뛰어 무대 조명에 매달리더니, 두세 번의 움직임만으로 2층 중앙으로 이동했다. 음악에 맞춰 내달리고 재주넘기를 반복하며 무대에 도착한 김지호는 동작을 멈추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국내 유일의 파쿠르(프랑스 군인들의 유격훈련에서 유래한 퍼포먼스 예술) 코치다. “방금 여러분이 보신 것은 파쿠르입니다. 영화 속 ‘스파이더맨’ 같죠.”

8~13일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춤이 말하다’는 춤에 설명과 이야기를 더한 ‘렉처 퍼포먼스’다. 전통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파쿠르 등 다양한 분야의 무용가들이 출연해 무대에서 춤을 추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대에서 춤을 출 때의 감상부터 과거의 경험, 자신의 성격 등 무용가들이 풀어내는 이야기 주제는 다양하다. 춤추는 이들의 인생을 엿보는 기분이다.

현대무용가 김설진은 복잡한 현대무용 움직임을 보여주며 각 동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유의 기교 있는 움직임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를 짚으며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모여서 춘 춤동작을 선보일 때는 “그땐 이게 멋있는 줄 알았다”며 웃는다. 장면과 사연마다 다른 배경음을 써 마치 무용을 더한 1인극을 보는 것 같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 윤혜진은 결혼과 출산 이후 처음 무대에 섰다. 3년 만에 복귀한 기분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쉬는 동안 몸이 변한 게 느껴져서 연습실 거울을 보며 더 노력합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딸과 가족이 있지만 연습실에서 제 몸에 집중할 때는 미안하게도 전혀 생각이 안나요.”
'몸짓 언어' 5인5색…춤이 말을 하다
무용수들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수다가 아니다. 무대 위 움직임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파쿠르는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는 대신 눈앞의 장애물을 보게 한다”는 김지호의 이야기는 이어지는 그의 공연을 더 풍성하게 다가오게 했다.

전통무용가 김영숙은 춤의 절정에서 미소를 짓는 것이 특징인 궁중무용 ‘춘앵전’을 선보인다. 느린 호흡으로 추는 춤의 동작에 깃든 의미를 함께 설명한다. 여느 강의처럼 지루하지는 않다. 팔 선의 각도를 맞춰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요즘의 ‘셀카(스스로 자신을 찍는 사진)’를 예로 든다.

현대무용가 예효승은 무용가이자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 마주치는 두려움을 춤으로 표현했다. 총연출을 맡은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은 “무용수들의 춤은 연습실에서 나오지만 그 속에는 복잡다단한 삶의 체험이 담겨 있다”며 “춤에서 삶을, 삶에서 춤을 뽑아낸 이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