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응답하라 '휴머니즘'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인기다. “맞아 저랬지”하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장면들이 정교하게 배열돼 있어 공감을 끌어내는 재미를 느낀다. 드라마 속 은행원 아버지처럼, 필자 역시 당시 30대 중반의 신참 책임자로서 직장 생활에 한창 몰입했다.

이 작품이 왜 인기를 끄는지 찬찬히 생각해 봤다. 시대 상황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낸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 그 당시 우리 사회가 가졌던 휴머니즘을 표현하고 있는 것도 큰 몫을 하고 있다.

1980년대엔 전철을 타면 처음 보는 옆 사람과 마치 친구처럼 두런두런 두서 없는 대화를 하다 목적지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에선 앉은 사람이 서 있는 사람의 가방을 받아 주는 게 마치 불문율 같은 의무였다. 운전기사가 틀어주는 라디오를 함께 듣다가 우스운 이야기가 나오면 버스 안 모든 사람이 함께 웃어대기도 했다. 공중전화 부스에선 먼저 전화를 끝낸 사람이 다음 사람을 위해 20원을 남겨 놓고 수화기를 공중전화 상단에 얹어놓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그 시절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참 많았던 것 같다.

2015년인 지금, 이젠 지하철에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다. 휴대폰을 통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사건과 사고 등을 눈에 담느라 정신없다. 자기 옆에 있는 사람에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만약 움직이다가 갑자기 옆 사람의 어깨라도 건드리게 되면 “죄송하다”는 영혼 없는 인사만 던지고 지나갈 뿐이다. 인사를 받는 사람도 영혼이 없다. 정말 죄송해서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섞이는 것이 싫어 대중교통을 회피하고,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다들 스마트폰과 메신저의 채팅 창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익숙하다. 회사에서도 얼굴을 보거나 전화로 말하기보단 이메일로 업무를 협의할 때가 잦아졌다. 편리함과 편안함이 늘어가면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휴머니즘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섞여 사는 사회’가 아닌 ‘섞이기 싫은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또다시 수십년이 지나 2015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사람이 사람을 피하는 사회’로 묘사되지 않았으면 한다.

박종복 < 한국SC은행장 jongbok.park@sc.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