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길이 없으면 만들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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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그는 잦은 병치레 때문에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했다. 친구들이 초등학교 4학년 되던 해 입학하려 했지만 나이가 많고 정원이 찼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1000일 독서’를 작정했다. 3년 동안 도서관이나 친구, 하숙생들에게 빌린 책으로 독하게 공부한 덕에 그는 남들과 다른 지혜를 체득할 수 있었다.
교보생명과 교보문고 창립자인 신용호. 그에게는 책이 학교였고, 정신의 곳간이었으며, 사업 아이디어의 보고였다. 24세에 중국에서 곡물회사를 시작해 41세에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 회사를 세우고, 64세에 세계 최대 서점(단일 층수)인 교보문고를 설립한 힘도 모두 책에서 나왔다.
‘1000일 독서’로 無學 극복
그의 궤적은 일본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닮았다. 마쓰시타는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온갖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고, 허약했기에 운동을 더 열심히 했으며, 못 배웠기에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초등 4학년 때부터 화로가게와 자전거포, 전등회사에서 일하던 그가 23세에 창업해 굴지의 기업을 일구고 85세에 미래 인재를 키우는 마쓰시타 정경숙을 세운 걸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교보생명의 ‘진학보험’은 전쟁 후의 궁핍한 한국 사회에 연간 10만여명의 입학금과 학자금을 마련하게 해줬다. 그렇게 자란 인재들이 경제개발의 주역을 맡았다.
그가 서울 종로1가 1번지에 교보문고를 개장한 것은 1981년. 비싼 땅에 아케이드를 조성해 돈 벌 생각하지 않고 서점을 짓는다고 반발하는 임원들을 설득하며 밀어붙인 결과였다.
그는 매일같이 교보문고 매장을 돌며 다섯 가지 지침을 마련해 직원들에게 실천하도록 했다.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책을 한 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책을 이것저것 빼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책을 앉아서 노트에 베끼더라도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책을 훔쳐 가더라도 도둑 취급하여 절대 망신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 좋은 말로 타이를 것. 이 5대 지침이 곧 교보의 창립 정신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그의 명언도 여기에서 나왔다.
서점 혁신 밑거름은 창립정신
교보문고가 창립 35돌을 앞두고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길이 11.5m의 대형 나무책상 두 개. 이곳에서 100여명이 편하게 앉아 책을 볼 수 있다. 서가 곳곳에도 작은 테이블과 소파, 벤치를 놓았다. 이런 좌석이 300개나 된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키즈가든, 꽃 향기 가득한 플라워존, 미술 전시장인 교보아트스페이스도 새로 만들었다.
독자들이 보고 싶은 책을 골라 북카페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했다. 아날로그 감성의 정취를 되살리는 손글씨 쓰기, 필사 테이블, 시 한 편 밥 한 끼 이벤트 역시 혁신 사례로 꼽힌다.
출판사·지역서점과의 관계도 개선하고 있다. 출판사에 주는 책값 비율을 높이고, 어음 결제 관행을 전액 현금 결제로 바꿔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소규모 지역서점들과는 배송 대행 등의 윈윈 전략을 공유하기로 했다. 이 같은 교보의 혁신 릴레이는 신용호 창립자의 전기 제목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와도 닮았다. 그 길을 하루 평균 4만여명의 방문객들이 함께 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교보생명과 교보문고 창립자인 신용호. 그에게는 책이 학교였고, 정신의 곳간이었으며, 사업 아이디어의 보고였다. 24세에 중국에서 곡물회사를 시작해 41세에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 회사를 세우고, 64세에 세계 최대 서점(단일 층수)인 교보문고를 설립한 힘도 모두 책에서 나왔다.
‘1000일 독서’로 無學 극복
그의 궤적은 일본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닮았다. 마쓰시타는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온갖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고, 허약했기에 운동을 더 열심히 했으며, 못 배웠기에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초등 4학년 때부터 화로가게와 자전거포, 전등회사에서 일하던 그가 23세에 창업해 굴지의 기업을 일구고 85세에 미래 인재를 키우는 마쓰시타 정경숙을 세운 걸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교보생명의 ‘진학보험’은 전쟁 후의 궁핍한 한국 사회에 연간 10만여명의 입학금과 학자금을 마련하게 해줬다. 그렇게 자란 인재들이 경제개발의 주역을 맡았다.
그가 서울 종로1가 1번지에 교보문고를 개장한 것은 1981년. 비싼 땅에 아케이드를 조성해 돈 벌 생각하지 않고 서점을 짓는다고 반발하는 임원들을 설득하며 밀어붙인 결과였다.
그는 매일같이 교보문고 매장을 돌며 다섯 가지 지침을 마련해 직원들에게 실천하도록 했다.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책을 한 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책을 이것저것 빼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책을 앉아서 노트에 베끼더라도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책을 훔쳐 가더라도 도둑 취급하여 절대 망신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 좋은 말로 타이를 것. 이 5대 지침이 곧 교보의 창립 정신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그의 명언도 여기에서 나왔다.
서점 혁신 밑거름은 창립정신
교보문고가 창립 35돌을 앞두고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길이 11.5m의 대형 나무책상 두 개. 이곳에서 100여명이 편하게 앉아 책을 볼 수 있다. 서가 곳곳에도 작은 테이블과 소파, 벤치를 놓았다. 이런 좌석이 300개나 된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키즈가든, 꽃 향기 가득한 플라워존, 미술 전시장인 교보아트스페이스도 새로 만들었다.
독자들이 보고 싶은 책을 골라 북카페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했다. 아날로그 감성의 정취를 되살리는 손글씨 쓰기, 필사 테이블, 시 한 편 밥 한 끼 이벤트 역시 혁신 사례로 꼽힌다.
출판사·지역서점과의 관계도 개선하고 있다. 출판사에 주는 책값 비율을 높이고, 어음 결제 관행을 전액 현금 결제로 바꿔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소규모 지역서점들과는 배송 대행 등의 윈윈 전략을 공유하기로 했다. 이 같은 교보의 혁신 릴레이는 신용호 창립자의 전기 제목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와도 닮았다. 그 길을 하루 평균 4만여명의 방문객들이 함께 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