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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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과업계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꼽히는 허니버터칩 개발이 한창이던 작년 봄. 시범생산한 제품이 성에 차지 않아 고심하던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45)는 머리를 식힐 겸 사무실로 돌아와 만화책을 꺼내들었다. 평소 재미있게 읽었던 신의 물방울 13권. 만화 속 천재 와인평론가 ‘토미네 잇세’가 1995년산 본 로마네 에세조 와인의 맛을 표현하는 대목에서 신 대표의 눈길이 멈췄다.

‘프레시한 아로마, 그리고 서양의 허브, 상쾌하고 우아하다. 금발의 귀부인이 산들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화가 모네의 ‘산보, 파라솔을 든 여인’이다.’ 와인의 맛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글을 읽는 순간 감자칩에도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콘셉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달콤한 맛에 고소한 향을 더하는 프랑스산 고메 버터를 사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도 바로 떠올랐다.

만화에서 경영해법 찾는다

신 대표는 만화 애호가다. 먹거리와 관련된 만화를 특히 좋아한다. 신 대표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 일본 초밥을 다룬 미스터 초밥왕, 한식의 정수를 담은 식객, 일본 기차에서 먹는 도시락을 소재로 한 에키벤 등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 그는 “정답은 어려운 경영서에만 있는 게 아니다”며 “미스터 초밥왕의 쇼타에게서 장인정신을 배우고, 에키벤의 다양한 도시락을 보고 제품 다각화를 고민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제일 좋아하는 신의 물방울은 모든 직원이 함께 읽도록 했다. 신 대표는 “만화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신입사원부터 대표이사까지 서로 소통하는 데 좋은 매개체가 된다”고 말했다. 심도있는 만화책 읽기를 위해 공연 관람권 등을 경품으로 내걸고 퀴즈대회도 열었다.

만화책 읽기는 그의 독서 욕심을 보여주는 한 단면일 뿐이다. 다양한 방면의 책 읽기는 그의 경영의 핵심 수단이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의 경영서도 직원들과 함께 돌려보는 주요 도서 목록이다. 최근에는 이나모리 회장의 바위를 들어올려라를 회독했다.

신 대표는 “이나모리 회장의 핵심 메시지는 직원들과의 공감을 키우라는 것”이라며 “독서토론회를 열어 직원들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출 최대화, 비용 최소화 등 최고경영자(CEO)의 ‘뻔한 잔소리’도 경영서를 통해 전달하면 직원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받아들인다”며 “목표를 설정하고 독려하는 데 독서 토론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문과 잡지도 폭넓게 읽는다.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에 능통한 점을 활용,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40여종의 신문과 잡지를 받아본다. 해외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해외출장 때마다 과자 ‘싹쓸이 쇼핑’

소통과 함께 중시하는 것은 체험이다. 신 대표는 해외 출장 때마다 현지 과자를 모두 사들인 후 직접 맛을 본다. 연초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합작사와의 미팅을 끝낸 뒤 호텔이 아닌 현지의 대형마트로 직행했다.

스낵코너에 들러 전통과자 등 일본의 인기 스낵 50여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비스킷 사이에 크림 등 각종 재료가 들어가는 샌드위치 비스킷, 고소한 맛의 정도와 형태에 따라 여러 품목이 있는 치즈 스낵 등 국내에서 생소한 과자들이 그의 구매 리스트에 대거 포함됐다. 신 대표는 “궁금한 것은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며 “참고하고 분석해 볼 만한 제품을 하나씩 담다 보면 빈 캐리어가 금세 가득 채워진다”고 말했다.

체험을 중시하는 경영철학 덕분에 해태제과의 신제품 시식회 풍경도 달라졌다. 신 대표는 “2008년 취임 뒤 신제품 개발회의에 참석해 보니, 임직원들은 형식적으로 맛을 보고 대표 판단만 눈치보고 있었다”며 “모든 직원이 체험해 보고 발언할 수 있도록 대표의 시식과 발언 기회를 가장 뒷순서로 돌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가 직원들의 창의로 이어지면서 해태제과는 소비자들로부터 호평받는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지난 9월 선보인 밥만두도 그중 하나다. 잡채 고기 등이 들어 있는 만두소의 3분의 1가량을 밥으로 채운 제품이다. 만두를 제대로 된 한끼 식사 대용식으로 하면 좋겠다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구현했다.

‘낙하산’ 꼬리표 떼낸 실적 반등

신 대표는 윤영달 크라운해태그룹 회장의 사위다. 서울대 경영학과와 미국 미시간대 MBA를 졸업했다 삼일회계법인과 외국계 경영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했다. 제과업과 무관한 경력 때문에 2005년 관리담당 임원으로 시작해 2000년 회사 대표에 오르자 ‘낙하산 CEO’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취임 직후 중국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들여온 과자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이른바 ‘멜라민 파동’이 때마침 터졌고, 이를 잘 수습하자 우려의 시선은 누그러졌다. 올 들어 허니버터칩을 앞세워 회사 매출을 3년 만에 반등시키며 ‘스타 CEO’ 반열에 올랐다.

신 대표는 “컨설팅사 근무 시절에도 주로 제과시장 분석과 마케팅을 했는데 낙하산으로만 보는 시선이 억울하기도 했다”며 “성과로 보여주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더 적극적으로 소통한 점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신정훈 대표 프로필

△1970년 서울 출생 △1989년 경문고 졸업 △1994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삼일회계법인 회계사 △1997년 베인앤컴퍼니코리아 이사 △1998년 미국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MBA) △2005년 해태제과 관리재경본부장 상무 △2008년 해태제과 대표이사 사장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