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조원의 기금을 운용하는 사학연금이 신용등급 A급 건설회사가 발행한 회사채를 잇달아 사들이고 있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사학연금은 현대산업개발이 1000억원어치의 3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지난달 19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 예측에서 500억원어치의 매수 주문을 냈다. 당시 현대산업개발은 사학연금의 대량 주문에 힘입어 모집 금액의 두 배에 가까운 1900억원의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사학연금은 이후 청약일인 지난달 26일 신청 수량인 500억원어치에 약간 못 미치는 물량을 받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산업개발은 이 회사채 신용등급을 ‘A0’(투자 등급 10개 중 상위 여섯 번째)로 평가받았다. 수요 예측 전 공시를 통해 제시한 금리는 최고 연 4.448%였다.
한 증권사 채권 발행 담당 임원은 “초저금리 시대에 연 4% 중반대 금리는 매력적이지만 기관투자가들이 기피하는 건설사 회사채인 만큼 수요 예측에서 모집액을 다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며 “하지만 사학연금 덕분에 분위기가 반전됐다”고 말했다.
사학연금은 지난 4월에도 롯데건설과 SK건설이 각각 1300억원과 10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진행한 수요 예측에서 1000억원과 600억원의 매수 주문을 넣었다. 당시 회사채 신용등급을 ‘A0’로 받았던 두 건설사가 내건 금리도 각각 연 4.417%와 연 4.869%로 연 4% 중·후반대였다.
사학연금이 A급 건설사 회사채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저금리 여파로 국공채나 AA급 이상 우량 회사채만으로는 목표 수익률을 맞출 수 없어서다. 사학연금 관계자는 “실적 변동이 크긴 하지만 대기업 계열의 건설사들은 부도 위험이 크지 않다고 보고 회사채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사학연금과 달리 투자 성향이 보수적인 다른 연기금 및 보험사들은 자체 투자 기준에 따라 A급 이하 건설사 회사채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채시장에서 건설사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사학연금이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