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듀폰
세계적인 화학회사 듀폰의 역사는 213년에 이른다. 프랑스혁명 때 미국으로 망명한 28세 청년이 3년 뒤 델라웨어주에 세운 공장이 모태다. 그의 이름 엘뢰테르 이레네 뒤 퐁 드 느무르(E.I. du Pont de Nemours·1771~1834)를 따 회사 이름도 뒤퐁이라고 해야 하지만, 미국 회사라는 점을 들어 영어식 듀폰으로 부른다.

듀폰은 남북전쟁과 서부개척 등의 급격한 수요에 힘입어 날로 번창하다가 1912년 반독점법의 철퇴를 맞았다. 듀폰과 허큘리스, 아틀라스로 세 조각 난 것이다. 지금의 회사는 이때 분할된 듀폰을 계승한 것이다. 위기 속에 찾아온 기회는 뜻밖에도 전쟁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듀폰은 거대기업으로 재탄생했다. 1차대전 때 연합국의 탄약 40%를 듀폰이 공급했을 정도다. 1930년대에는 세계 3대 화학기업으로 올라섰다. 2차대전 중 원자폭탄, 이후 수소폭탄까지 만들었다.

화약 외에도 수많은 화학제품과 자동차, 원자력 분야까지 진출했다. 생산품은 거의 2000종에 달했다. 1935년 개발한 나일론은 세계인의 생활을 바꿔놓았다. 듀폰은 1908년 창업한 GM에 출자했고, 1919~31년에는 자동차(듀폰)를 직접 생산하기도 했다.

이처럼 2세기에 걸쳐 미국 2위, 세계 3위 화학기업으로 성장한 듀폰도 글로벌 경기 불황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신흥국 수요 감소와 실적 부진, 투자자들의 압박 때문에 미국 1위인 다우케미칼과 합칠 것이라고 한다. 다우케미칼의 역사가 118년이니 듀폰으로서는 어린 동생과 손을 잡는 셈이다.

두 회사가 뭉치면 시가총액 1170억달러(약 138조원), 매출 880억달러(약 103조원)로 독일 바스프에 이어 2위 자리를 확실히 굳히게 된다. 화학업계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탐내는 농업 분야의 성장 전망도 밝아진다. 세계 농약 시장점유율이 17%로 3위로 뛰어오르고, 미국 옥수수 종자 시장의 41%, 콩 종자 시장의 38%를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두 회사가 군살을 빼가면서 새로운 사업 분야에서 얼마나 좋은 성과를 이뤄낼지는 알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의 대규모 인수합병 바람과 관련해 ‘더 이상 성장할 방법을 찾지 못한 기업들이 택하는 차선책이자 추가 성장보다는 수성(守城)을 위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은 걸 보면 더욱 그렇다. 무한경쟁의 글로벌 무대에서는 200년 넘는 장수기업도 한순간에 휘청거릴 수 있다. 시장은 냉혹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