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겨울 맛 여행 3
웬 ‘여자만’인가 했더니 전남 보성의 벌교 앞바다 이름이 여자만(汝自灣)이다. 만 가운데 떠 있는 섬 여자도(汝自島)에서 유래했다. 모래가 없고 차지며 물이 맑아 꼬막 산지로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춘 이곳에서 국내 꼬막의 70%가 나온다. 멀리서부터 널배(갯벌 위에서 타는 널빤지 배)를 타고 움직이는 어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살이 통통하면서도 쫄깃하고 간간하면서도 알큰한 맛까지 밴 꼬막 맛은 11~3월에 가장 좋다.

벌교역 부근에 시장과 먹자골목이 좍 펼쳐져 있다. 온갖 꼬막요리를 다 즐길 수 있지만, 그중 대표 메뉴는 꼬막정식이다. 통꼬막 데친 것과 꼬막 회·양념무침, 꼬막전 등이 한 상 가득 차려져 나온다. 꼬막탕수육까지 있다. 살짝 데친 새꼬막 살에 각종 채소와 양념을 넣고 버무린 무침, 여기에 참기름과 김가루를 섞어 숟가락으로 가득 떠먹는 맛이 일품이다. 쌀뜨물에 새꼬막을 넣고 한꺼번에 끓이는 꼬막된장국도 별미다.

맛뿐만 아니라 영양도 좋다. 고단백 저지방의 알칼리식품으로 비타민, 필수아미노산이 균형 있게 들어 있고 흡수가 잘 된다. 간 기능을 좋게 하고 콜레스테롤을 막는 타우린,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베타인, 항산화와 노화 억제에 관여하는 셀레늄도 풍부하다.

꼬막 종류는 참꼬막, 새꼬막, 피조개 세 가지. 몸집과 껍데기의 부채꼴 줄 숫자로 구분한다. 제일 비싼 참꼬막은 줄이 17개 정도로 적은데, 모양이 둥근 새색시 같다. 새꼬막은 줄이 32개 정도로 많다. 무수리 정도라고 할까. 덩치가 큰 피조개는 42줄 안팎에 까만 털이 많아 뭉툭한 머슴을 닮았다. 피조개는 자연산보다 양식 품질이 더 좋아 값도 비싸니 그 앞에서 자연산 타령했다간 타박만 듣는다.

참꼬막은 밀물 때 잠겼다 썰물 때 드러나는 간석지에서 자란다. 4년을 기다렸다 갯벌에 들어가 직접 캔다. 그것도 물때 맞춰 한 달에 열흘 정도밖에 작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이 주신 생물’로 불린다. 수심이 더 깊은 곳에 사는 새꼬막은 2년 만에 대량으로 채취한다.

꼬막 요리의 비법은 데치는 데에 있다. 소금물에 담가 뻘을 빼고 냄비에 넣어 끓이다 거품이 오르면 금방 불을 꺼야 한다. 푹 삶으면 질겨지므로 입을 살짝 벌렸을 때 꺼내는 게 중요하다. 벌교에서 꼬막을 사간 사람들이 왜 그 맛이 안 나느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데치는 노하우를 모르기 때문이다. 여자만의 황금빛 노을을 배경으로 달착지근하면서도 쫄깃한 꼬막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면, 좀 힘들고 쓸쓸하더라도 올 겨울은 그리 춥지 않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